[대중출판 · 실용서]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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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서양인이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를 들먹이며 풍수(風水)를 거론하는 모습은 놀랍다. 크건 작건 풍수지리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든 우리 입장에서는 "뭘 안다고 그래"하는 근거없는 문화적 우월감이 그 배경에 깔려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구인들 사이에서 동양문화, 특히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들이 쌓아올린 문화유산을 자신들의 과학적 잣대로 가다듬어 보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풍수지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원제 Move your Stuff,Change Your Life)』는 서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유행한다는 BTB(Black Hat Tantric Buddhist.탄트라밀교 흑모파)의 풍수이론을 정리한 책이다.

BTB는 중국의 전통 오행 풍수이론에 음양이론.컬러이론.서양의 건축학.인테리어 디자인.생리학과 생태학.심리학을 결합시키고 보이지 않는 영성(靈性)까지 담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자는 풍수이론이라 해서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그저 팔괘의 모양을 응용해 집을 9개 사각형으로 등분하고 각 부분이 부(富).명성.관계.아이들.여행.직업.지식.가족.건강을 뜻하고 있다고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해당부분이 풍수적으로 적절하게 배치돼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조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경우 가장 신경 쓸 부분은 맨 왼쪽 3분의 1부분이다. 이곳에 자주색.녹색.금색으로 된 풍요로움을 떠올리는 돼지저금통 같은 것을 놓아두면 복이 깃든다는 식이다.

그는 풍수의 목적은 사물을 제대로 배치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본다. 마치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처럼, 무엇을 어디에 설치할까에 따라 서로의 관계가 바뀌고, 결국 집이라는 '몸'이 건강해지느냐 병에 걸리느냐가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풍수가 종교적 신념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되묻는다. "음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게되는 것이 종교에 위배되나요?"

이것이 얼마나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9가지를 채우기 위해 '풍수'라는 이론을 응용해보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은 차츰 믿음이 되고 그것이 다시 자신감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사물이나 사람에게나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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