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미대 4수생 되니 미술 욕심 더 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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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시인(43·사진)은 4수생이었다.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가고 싶었던 그는 실패가 많았던 과거에 대해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화가보다 시인이자 사진가로 거듭나서 더 좋다고 웃었다.

“남보다 못나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편하고 공부도 더 애쓰니 좋았어요. 미술을 하더라도 이론으로 승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미대에 가면 밥굶기 딱 좋다고 말리는 가족을 이해시키느라 책을 더 팠다고 했다. ‘예술이 이렇게 힘들구나’싶어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지만 열매는 달았다. 그가 쓴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바다출판사)이 태어난 배경이다.

이 책은 2002년 11월 초판이 나왔을 때 서점에서 에세이로 분류돼 속된 말로 피를 봤다. 2년이 지나면서 미술도서로 다시 태어나 제 자리를 찾았다. 이제는 시인이자 사진작가로 대접받는 신씨의 자리매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당시에는 낯설던 외국 작가들이 지금은 한국 미술계에도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된 걸 보면 신씨의 안목이 괜찮다는 검증을 거친 셈이 됐다.

“새장엔 새가 없고, 금고엔 돈이 없고, 상자엔 그 무엇도 없다. 이 무모한 노동이 바로 예술!” “내 생각은 개념적인 미술을 재미 있고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할 때마다 너무 신중하고 현명한 사람보다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이런 말들이 절실하게 들리는 건 신현림 시인의 피땀 어린 노력 때문이다. 그는 독학으로 유쾌하게 미술을 정복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더 절실했다. 책값이 없어 도서관에서 필요한 대목을 복사하고 서점에서 수첩에 적다보니 오히려 최선을 다하게 됐다. 사진작가로 세계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제가 감동하는 작가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더라구요. 느끼는 그만큼 쓰고 보여주니까 독자들도 좋아하던걸요.” 그는 혼자 보기 아까운 이 책을 평범하면서도 살짝 옆길로 빠지는 이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글 = 정재숙, 사진 =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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