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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속뜻 읽기] 5. 박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옛 가구나 자수품 등을 보면 박쥐가 새겨져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김홍도가 그린 '군선도'라는 그림에도 신선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박쥐가 있다.

신선들 사이에 박쥐가 날아다닌다는 것으로도 박쥐가 심상치 않은 동물임을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박쥐를 부정적인 이미지의 동물로 생각한다.

박쥐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이 동물이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속담에 '박쥐구실'이라는 표현이 있다. 즉 새에 붙었다가 쥐에 붙었다가 한다는 말로,기회주의자를 말할 때 사용한다.

박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박쥐 오입쟁이'라는 말에 와서는 더 가관이다. 마치 오입쟁이처럼 낮에는 잠만 자고 있다가 밤이 돼야 일거리를 찾아다닌다는 박쥐의 생태적 특징을 반영한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서구에서도 같았던 듯하다. 박쥐를 사탄.죽음.공포 등의 상징으로 볼 정도였다. 하지만 '배트맨'과 같은 만화영화에서는 정의의 수호자로 그려지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박쥐를 풍요의 상징으로 많이 그렸다고 하지만, 그 이미지는 배트맨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박쥐의 부정적인 인식과 달리 우리 민족은 박쥐를 길상문양으로 생각하고 널리 활용했다.박쥐가 우리의 가구장식이나 장신구 등에 많이 새겨지게 된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박쥐의 한자어 복(?)의 발음이 복을 내린다는 복(福)과 같기 때문이다.

즉 박쥐 문양을 새겨 넣음으로써 복을 기원하는 길상문(吉祥文)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특히 다섯마리의 박쥐를 새기면 오복(五福)을 기원하는 뜻이 된다.

또다른 이유는 박쥐의 번식력이 강하다고 생각하여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마음에 박쥐문양을 새겨 넣었다는 것.

이것은 여성의 장신구인 노리개나 수저를 넣는 수저집 등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자손번창과 함께 남자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의 덕목이었다. 여권이 신장하고 있는 요즘 이런 말을 하면 몰매 맞기 십상이지만, 이런 목적으로 박쥐문양이 활용됐던 것이다.

하지만 박쥐문양이 복식을 수놓거나 꾸미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움을 준다. 왜 사람들이 입는 옷의 문양으로 박쥐를 채택하지 않은 것일까. 중국의 경우에는 보문(寶文:복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박쥐가 사용됐다고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박쥐의 습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박쥐의 문양을 넣은 옷을 입으면 박쥐와 같이 낮에는 놀고 밤에만 움직이는 야행성 인물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재물이나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문양으로 박쥐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 문양의 사용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박쥐를 선서(仙鼠), 또는 날아다니는 쥐(飛鼠)로 보는 기록도 있다. 박쥐가 5백년을 살면 하얗게 변하고, 이를 사람이 잡아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규합총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선서는 신선과 같이 노는 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사실은 김홍도의 '군선도'로 쉽게 짐작된다.

그런데 이 박쥐를 잡아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선과 같이 노는 쥐라서 일반 사람들이 잡아먹으면 신선의 경지에 오른다는 뜻인지 정확하지 않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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