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뉴라운드, 문제는 이제부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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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나흘간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각료회의가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뉴라운드)출범을 앞두고 회원국들간의 이해가 마지막 순간까지 엇갈려 큰 진통을 겪었다. 회의 결과를 떠나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이미 뉴라운드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것이다.

정부가 설정한 이번 협상의 최대 목표는 농업 부문의 시장 개방 저지와 미국 등 선진국의 반(反)덤핑조치 남용 규제였다. 그러나 뉴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농업 분문의 시장 개방 원칙에 우리가 민 '점진적(progressive)'이라는 단어 대신 '실질적(substantial)'이라는 표현이 채택됐고, 반덤핑 부문에서는 우리가 의도했던 '협상의 즉각 개시'라는 문구가 빠져 전체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다.

대신 공산품 분야에서 관세의 대폭적인 인하가 이뤄진데다 투자.경쟁과 무역 원활화 부분 등에서 자유무역을 진전시키는 내용들이 포함된 점은 무역 의존도가 80%를 웃도는 우리 입장에서 긍정적인 결과로 분석된다.

협상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 들어설 뉴라운드 체제에서 피해는 최소화하고 이득은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와 전략을 갖추는 일이다.

정부는 앞으로 분야별로 진행될 관세율 등 후속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이해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협상력과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산업 분야에서는 협상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 개편과 자원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당장의 과제는 뉴라운드 협상으로 2004년 이후 대폭적인 시장 개방이 불가피해진 농업 분야의 대책 마련이다. 주곡인 쌀을 비롯, 가격이 국제 시세를 크게 웃도는데도 관세장벽으로 보호해온 주요 농작물의 개방이 불가피해진 만큼 농정의 기본 방향과 플랜을 새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특히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에도 정부 수매와 증산정책이라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쌀농사 위주의 농정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UR 타결 이후 50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농민들의 시위가 계속되는 물량 위주의 농정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다.

현 정부 역시 추곡수매가를 계속 올려주고 수매량은 늘리다 보니 연간 쌀 소비량의 3분의1을 창고에 쌓아놓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제 돈을 쓰더라도 국제 경쟁력이 있는 작물과 영농단위.인력을 갖춰줄 수 있는 질(質)위주의 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뉴라운드 협상을 한국 경제에 새로운 도약의 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기업.학계의 역량도 결집시켜야 한다. 특히 농업을 포함한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미 레임덕에 접어든 정부가 농어민 등 이해집단의 반발을 수습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치권의 초당적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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