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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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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나의 은사이신 조정남 교수님은 지난해 정년퇴직해서 지금은 대학교 가까이의 오피스텔에 연구소를 열어 전문 월간지 출판에 힘을 기울이고 계신다. 나는 바쁜 것을 핑계로 여러 모임을 결석해온 불효한 제자이지만 마음으로는 그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대학원 석사과정 때 나는 다른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으나 그 교수님이 정년퇴직하면서 조정남 교수님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교수님은 내 석사논문을 보면서 “일본 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종종 말씀해 주셨다. 나는 석사논문을 조선개화파 김옥균과 일본의 계몽주의자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해 쓰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자료를 보면 후쿠자와가 김옥균 등을 이용해서 조선을 보호국화할 속셈이었다는 증거들이 다수 나온다. 후쿠자와는 젊은 시절부터 ‘이웃나라를 빼앗아 버리자!’라고 친구들과 이야기했다는 글도 있다. 후쿠자와는 현재 일본의 1만엔권에 들어있는 얼굴이고 일본의 게이오대학 창시자이며 그의 조선관(觀)을 잘 모르는 일본인에게는 문명개화의 아버지로 통한다. 당시 나는 후쿠자와가 드러낸 침략성을 자료로는 확인했지만 너무 심하게 보이는 자료는 사용하지 않고 가능하면 그의 침략성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것을 예리하게 간파하시고 나에게 학자가 가져야 할 자세를 시종일관 지적해 주셨다.

교수님의 귀중한 충고를 심사숙고하고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 학자로서 국적을 초월하자’였다. 한국이나 일본이라는 국적을 떠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면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지를 굳힌 것이다. 이후 나는 스스로도 성장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박사 때는 식민지에 대한 일본의 지배정책을 연구했는데 나의 결심은 유지되었고, 전공연구를 하던 그때의 기본자세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조정남 교수님은 현재의 나의 학문적 본질을 만들어 주신 진정한 스승이시다. 부인 최영호 여사님도 항상 나의 저서를 읽어주시고 평가해주신다. 학문적인 지침만이 아니고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면 나를 친자식처럼 돌봐주신다.

다가오는 스승의 날을 생각하면서 나의 스승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도 학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본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