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깨달음] '이단·사이비 감별사 2세' 탁지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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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어떤 종교든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믿음&깨달음'은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의 믿음에 따라, 깨달음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리즈입니다. 그들의 구체적 삶을 통해 참된 종교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마련합니다.

1994년 '이단.사이비 감별사'란 별칭으로 유명했던 탁명환(卓明煥.당시 57세)씨가 피살된 현장을 지킨 사람은 둘째 아들 지원(志元.34)씨다.

지원씨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 겸 월간 '현대종교' 발행인 자리를 맡아 기독교의 이단.사이비와 싸워온 지 7년9개월. 아들은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발행했던 월간 '현대종교'(http://www.hdjongkyo.co.kr)(02-439-4342) 창간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아버지는 불쌍한 분이셨습니다. 항상 테러와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힘들고 위험했으니까요.그러니 대(代)를 이어 그 일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죠. 아버지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고요."

그런 지원씨가 대를 이을 결심을 한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사건 당시 아버지를 모시고 강연회에 다녀온 지원씨는 주차를 한 뒤 먼저 내린 아버지를 좇아 아파트 복도로 들어섰다. 그 짧은 순간, 칼에 찔린 아버지는 복도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 말 못하고 피를 흘리며 숨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결심했습니다. 아들밖에 누가 그런 일을 이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죠."

아버지가 숨질 당시 지원씨는 성결대 신학과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있었다. 3형제 가운데 형(지일)은 미국에 유학 중, 동생(지웅)은 군복무 중이다.'이단.사이비 감별사 2세'이길 다짐한 지원씨는 장례를 치르고 곧바로 연구소로 출근해 아버지가 남긴 자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일은 쉽지 않았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아버지의 삶까지 그대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후원자나 연구소 운영을 돕는 젊은 크리스찬 자원봉사자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내 윤정(31)씨는 가장 큰 힘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단.사이비와 싸우는 무기인 '현대종교'창간 30주년이란 경사를 앞두고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여름 홍수 때 서울 휘경동 반지하 자료실에 물이 차 아버지가 평생 모았던 수만 건의 문건.필름.테이프가 젖어버렸다. 자료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자료 전산화를 서두를 계획이다. "가장 힘든 일이 뭐냐"고 물었다.

"다들 그런 질문을 하더군요. 이단.사이비 집단들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구요.그 반대예요. 정말 속 상하는 일은 한국교회의 무관심입니다. 이단이나 사이비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발 붙일 공간을 만들어주는 기성 교단과 교회가 문제입니다. 물질만능주의나 권위주의, 무엇보다 배타적인 풍토가 저를 정말 힘들게 만듭니다."

교단이든 교인이든 당장 이단.사이비 관련 문제만 생기면 卓씨의 연구소를 먼저 찾는다. 매년 수천명이 숨넘어갈듯 찾아와 상담하고 자료를 얻어간다.

하지만 자신과 직접 관계된 일이 일단락되면 발길을 끊는다. 외로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란 얘기다.

그 외로움은 재정적 어려움과도 직결된다. 이단.사이비 연구의 필요성은 말하면서도 그 연구를 후원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원씨는 '현대종교'창간 30주년을 자축하고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지난 9월 서울과 안산에서 교회를 빌려 '후원의 밤 콘서트'를 열었다. 많은 사람이 참가와 지원을 약속했는데, 막상 결산해보니 행사 준비에 들어간 돈보다 후원금이 적게 모여 적자가 났다.

지원씨가 가장 말하고 싶어하는 대목은 "이단.사이비 문제는 비단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 이단은 대부분 가정파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단과의 싸움에 뛰어든 계기도 친구 어머니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자살한 사건이었다. 지원씨가 귀띔해준 쉬운 '이단감별법'.

"쉬운 구분법은 '시한부 종말론'이죠.기독교는 종말론을 믿지요. 그러나 건전한 기독교는 종말의 시기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단.사이비는 '곧 종말'이라고 시기를 못박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바쳐라'는 식의 엉뚱한 요구를 하지요."

오병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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