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외자 유치로 일어선 ‘북방의 홍콩’ 벤치마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4년4개월 만에 다시 압록강을 건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첫 행선지는 당초 예상했던 베이징(北京)이 아닌 다롄(大連)이었다. 지난 네 차례 방중 길에서는 김 위원장의 동선이 대부분 베일에 가려졌었지만 이번에는 첫날부터 외부에 노출됐다.

이런 처지라 김 위원장이 중국의 많은 도시 중에서 유독 다롄을 제일 먼저 찾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핵실험에 따른 유엔 제재 여파로 경제난에 빠진 북한의 상황이 김 위원장의 발길을 다롄으로 향하게 했다고 본다. 북한이 유일하게 기댈 곳인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중국과 국제사회에 보내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측이 나온 배경은 무엇보다 다롄이 갖는 지리적 중요성 때문이다. ‘북방의 홍콩’으로 불리는 다롄은 중국 동북 3성 중에서도 가장 활기찬 도시로 꼽힌다.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동북진흥전략 사업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북 3성의 대표적 경제특구인 다롄은 조선·장비제조업·물류가 발달했고 북·중 간 철광석·식료품 거래가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터라 외국인 투자도 이곳에 몰리고 있다. 2007년에는 미국 인텔이 25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해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한국에선 STX가 투자해 다롄선박중공업 등 대형 조선소를 세웠다.

한편 외화 부족에 시달려 온 북한은 올 들어 중국 자본 유치에 적극 뛰어든 상태다.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외자 유치와 경제 성장에 성공해 온 다롄의 경험이 유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로 인해 김 위원장이 벤치마킹 대상지로 다롄을 점찍었을 거라는 얘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구 600만 명으로 동북 3성 물동량의 90%가량을 처리하는 다롄은 보하이(渤海)만의 물류 중심지이기도 하다. 다롄에는 나진항의 10년 독점사용권을 확보한 중국 환경설비 제조전문업체인 촹리(創立)그룹의 본사도 위치하고 있다. 촹리그룹은 나진항 1호 부두의 개발권과 사용권을 따냈고 추가로 10년간 사용기간을 연장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은 지난해 2600만 위안(약 43억원)을 투자해 나진항 1호 부두를 다시 지었다. 나진항 건설 계획을 진행해 온 북한으로서는 그래서 다롄이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 다롄을 찾은 김 위원장도 이날 촹리그룹 본사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불어 다롄의 항만·부두 개발 실태를 현장에서 직접 시찰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인포그래픽=박춘환·김주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