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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부르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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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여자들이 다리를 드러내놓기 시작한 건 100년도 채 안 된 일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겹겹의 치마를 두르고도 행여 다리가 보일까 치마 뒤끝을 질질 끌고 다녔다. 빅토리아 여왕이 다스리던 영국에선 책상 다리나 피아노 다리까지 천으로 감쌌다. 망측하단 이유로 닭고기 다리를 ‘검은 고기’, 가슴살은 ‘흰 고기’라 에둘렀을 정도다. 하지만 가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옷으로 감출수록 오히려 남성들의 에로틱한 관심이 높아진다”(영국 복식학자 제임스 레이버)니 말이다.

여전히 여성의 노출을 죄악시하는 이슬람교 쪽에선 수긍하기 힘든 소릴 게다. 얼마 전 이란의 고위 성직자 호자톨레슬람 카젬 세디기는 빈발하는 지진마저 ‘헐벗고’ 다니는 여성들 탓이라고 비난했다.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 때문에 남자들이 유혹을 못 이겨 도덕이 문란해지자 신이 징벌에 나섰단 거다. 원래 이란 여성들은 얼굴을 뺀 머리칼과 몸 전체를 덮는 차도르를 써야 한다. “너희 아내와 딸들이 옷으로 몸을 가리도록 하라. 그렇게 분별되고 보호받는 게 좋으니라”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히잡·니캅·부르카 등 명칭과 모양은 달라도 여타 이슬람 국가들 역시 여성들의 노출을 막는 안전장치를 강요한다. 가장 극단적인 게 눈 부위조차 촘촘한 망사로 숨기는 부르카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여자 얼굴은 남편만 볼 수 있다”며 아내에게 부르카를 입혀놓곤 금발 미인의 누드 일색인 도색잡지에 탐닉하는 카불 남자들의 이중성을 고발했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아프간을 공격한 미국의 또 다른 명분이 바로 ‘부르카로부터의 여성 해방’이었다.

최근 벨기에가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공공 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도 “부르카가 여성의 인격을 침해한다”며 조만간 금지법을 추진할 참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르카를 못 입게 하면 집에만 갇히게 돼 되레 인권을 악화시킨단 주장이다. 무슬림이란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자발적으로 입는 경우도 많기에 종교 차별이란 지적도 나온다. 공연히 여권 운운하지만 실은 급증하는 이슬람계 이민을 견제하려는 속내란 거다. 이쯤에서 분분한 논란을 접고 당사자인 여자들 입장에 한번 서볼 일이다. 싫다는데 억지로 입으란 것도, 좋다는데 억지로 벗으란 것도 다 똑같은 억압 아닐까.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