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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하원, 부르카 금지법 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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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벨기에 하원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부르카(사진)와 니카브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부르카·니카브는 얼굴과 신체를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이다. 눈 부분이 망사로 된 것이 부르카며 눈만 드러낸 것이 니카브다. 유럽에서 이 같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것은 처음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이웃 나라들도 유사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2004년 학교에서 히잡(이슬람 여성용 머리가리개 스카프)이나 키파(유대교 남성용 모자) 등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바 있다.

벨기에의 법안은 거리·공원·운동장 등에서 부르카를 착용하면 25유로(약 3만6000원)의 범칙금을 물거나 최대 7일간 구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 행사 때에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 이를 착용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들어 있다.

표결에는 150명의 재적의원 중 134명이 참여했다. 그중 132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2명은 기권했다. 법안은 상원을 통과해야 발효된다. AFP 통신은 이르면 6월 상원에 법안이 상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조기총선 등의 향후 정치일정 때문에 표결이 다소 늦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벨기에서는 최근 지역 갈등으로 연립정부가 무너져 조만간 하원의원을 새로 선출하는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통신은 상원에 법안이 넘겨지면 무난히 가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벨기에 정부는 얼굴 확인이 어려워 테러 방지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부르카 금지를 추진했다. 이에 대해 이슬람 단체는 “그렇다면 오토바이 운전자의 헬멧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맞서 왔다. 부르카나 니카브를 착용하는 벨기에의 이슬람 교도가 30명 정도에 불과해 입법이 과도한 조치라는 여론도 있었다. 법안이 통과되자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위험한 선례”라고 지적했다. 벨기에 이슬람 단체는 유럽인권법원에 제소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에서의 부르카 금지 움직임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촉발됐다. 프랑스는 지난해 말부터 입법을 추진했으나 지난달 최고 행정재판소 역할을 하는 국사원(콩세이데타)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 제동이 걸렸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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