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초저금리 쇼크] 中. 아슬아슬한 돈장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신한은행 서울 강남 중앙지점 대출담당 김철수 주임. 요즘 그는 사무실보다 밖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돈을 쓸 만한 사람을 찾아가 상담하는 것은 물론 까다로운 서류 작성과 고객의 주민등록등본.등기부등본도 직접 떼어 들고 간다.

가만히 앉아 꺾기 예금까지 요구하며 대출 도장을 꾹 찍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된지 오래다.

하나은행의 모기지 브로커로 활동하는 2백명은 정식 직원이 아니다. 주택담보대출만 전문적으로 끌어오는 계약직으로 전직 행원이 많다.

이들은 한달에 2천억원의 실적을 올리며 올해 하나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 70%를 해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김종창 행장은 지난 5월 취임한 뒤 전국 6개 공단을 돌며 간담회를 열었다. 그 때마다 주요 거래처를 찾아 애로사항을 듣고 현장 분위기를 살폈다.

金행장은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면서 "직접 거래업체 대표를 만나야 새로운 대출상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고 말했다.

초저금리 상황 아래서 수익을 내려는 몸부림은 민간.국책 은행이 따로 없다.

금융회사의 돈장사는 이제 더 이상 땅 짚고 헤엄치는 게 아니다. 까딱 잘못했다간 이문은커녕 역마진이 난다. 금리가 낮은 데다 경기가 나빠 부실기업이 늘어날 판이라서 안심하고 돈을 빌려줘 이익을 낼 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

한 시중은행장은 "인원을 줄이고 수수료를 올리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한계가 있다" 면서 "한푼이라도 더 수익을 내기 위해 일선 점포장은 물론 본점 임원들도 현장에서 고객을 상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고 말했다.

생명보험사들은 만기가 되면 높은 고정금리로 이자를 주기로 한 장기 저축성 상품 때문에 이미 경계경보를 발동했다. 모 생명사 임원은 "하루하루가 칼날 위를 걷는 기분" 이라며 "경비를 줄이고 상품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한창" 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이제 예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소액예금에 대해선 이자를 주기는커녕 수수료를 물리는 은행도 적지 않다. 반면 거액 예금에 대해 이자를 더 주는 것도 없어졌다. 대신 은행에 이익을 많이 안겨주는 거액 예금주들에게 건강진단서비스나 재테크 상담 등 VIP 대접을 해주고 있다.

상품개발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자를 많이 주는 상품은 골칫거리다. 금융회사에 이익을 안겨주면서 고객에게 다른 곳보다 많은 이자를 주는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마을금고연합회는 최근 파생상품 전문가를 영입해 '1백3% 원금보장 펀드' 를 내놓았다. 홍콩의 금융기관까지 동원, 개별 상품 옵션에 자금의 일부를 투자하므로 원금의 1백3%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민은행은 투자.법률.세무 등 부동산과 관련된 전문가로 부동산신탁 개발팀을 구성했다. 이 팀에서 내놓은 6개 펀드는 모두 판매되자마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한경수 팀장은 "일반 금리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플러스 알파를 보장하는 상품으로 은행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 고 자랑했다.

너나없이 0.1%포인트의 틈새를 찾아 새 상품을 내놓자 금융기관간 영역을 구별하기 어렵다. 은행이 상호신용금고의 영역을, 상호신용금고는 사채업자의 영역을, 할부금융사는 소액대출 시장을 파고든다.

일부 은행에선 신용이 다소 떨어지는 고객에게도 즉석에서 3백만원의 소액대출을 해준다. 물론 금리는 다른 대출보다 높다. 상호신용금고는 사채나 다름없는 연 60%짜리 소액대출을 하고 있다. 할부금융사는 대출전용카드를 통해 월 1조원대의 소액대출을 하고 있다. 할부판매보다 소액대출에 치중해 할부금융사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일본계 대금업자의 국내 진출에 자극받은 사채업자들도 공동으로 회사를 만들어 고금리 소액대출 시장에 뛰어들었다.

초저금리 상황은 어음할인이 주업인 전통적인 사채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서울 명동지역 상인들은 이 지역 사채업자가 지난해의 30% 정도로 줄었다고 전했다. 할인할 어음이 줄어들고 제도권 금융회사의 소액대출 상품에 밀려 고금리 급전대출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 사채업자는 "우량 중소기업의 어음은 물론 전에 눈길도 주지 않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의 어음도 취급한다" 며 "가끔 나오는 대기업 어음은 할인율이 연 8%대로 떨어졌다" 고 말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신용카드사는 신이 나 있다. 자금을 조달하는 주된 수단인 회사채의 발행금리는 떨어지는데 고정돼 있는 대출금리는 여전히 높아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상반기 카드사의 순이익이 1조원을 넘었다.

최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