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소감] 손나경씨 "나를 버리지 않은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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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번번이 거실 바닥을 닦다, 얼마만큼 닦았는지 잊어버린다. 거실을 닦을 때면 어김없이 도지는 증상이다.

장판에 그어진 사소한 흠과 아이가 그려놓은 낙서를 염두에 둬도 마찬가지다. 방금 전에 아이의 낙서 위로 걸레가 지나갔는지 어쨌는지 헷갈린다.

어제 걸레질하던 기억의 잔영과 겹쳐 늘 의심스럽고 찝찝하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한번 더 바닥을 훔치는 수밖에 없다.

꿈에라도 당선될까 준비했던 말들은 평소의 건망증대로 어디론가 후루룩 날아가버렸다. 머리 속을 뒤져도 도무지 깜깜하다.

거짓말처럼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다. 당장도 이러니 앞으로의 글쓰기는 또 얼마나 깜깜할 것인가.

영법(泳法)을 배우기도 전에 물에 뛰어든 아이처럼 두렵고 무섭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물에 빠진 김에 죽어라 물장구 치고 팔 다리를 저어보는 수밖에.

별다른 준비도, 변변한 각오도 없이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글을 쓸 때에야 비로소 시간과 공간이 내 몸을 관통하며 빠르게 혹은 아주 느리게 지나가고, 꺾이며 소용돌이 치는 게 느껴졌다.

온몸의 세포가 수소 넣은 풍선처럼 빵빵해지고 마음이 바람보다도 먼저 펄럭이는 때, 가끔이지만 글 쓸 때가 그랬다.

온전한 고통뿐이었다면, 온전한 기쁨뿐이었다면 내 글쓰기가 이렇게 질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버리지 않은 소설이 고맙고도 고맙다.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런 기쁨을 표해줄 사람은 아마 세상에선 다시 없을 것이다.

이제야 진정으로 내 일에 기뻐해 줄 한 사람이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맘이 아린다. 위로해주긴 쉬우나 진정으로 기뻐하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태 나는 헛살아 왔고 앞으로도 헛살 것이 분명하지만 삶에, 글에 더 이상 엄살이나 응석부리지 말아야겠다.

언제쯤 나는 묵묵히 견디는 법을 배울 것인가. 자격미달의 아내와 엄마를 가진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이 기쁨의 반은 그들의 몫이다. 항상 넉넉히 이해해주셨던 이순원 선생님과 애써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선생님들께도 두루 감사의 말씀 올린다.

◇ 손나경 약력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90년 경북대 국문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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