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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홍의 정치보기] 상도동 간 JP밀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달여 전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찾은 한 사람이 있었다. 자민련 소속의 정상천 전 의원이다.

JP(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그를 보냈다. 자기와 YS의 만남을 주선하는 임무를 쥐여줬다. 그는 현역의원도 아니고 이렇다 할 당직도 맡고 있지 않다. 지난해 초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은 게 최근의 경력이다. 그러나 JP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특히 YS의 경남고 2년 후배란 점이 그같은 역할을 맡게 했다.

YS와 鄭씨가 나눈 얘기를 소상히 알긴 어렵다. 만났다는 사실 자체를 여지껏 정치권은 잘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YS가 JP의 향후계획을 鄭씨로부터 대강이나마 들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YS가 그 얘기를 토막토막 뱉어냈다. 鄭씨와의 만남도 그런 중에 나왔다. YS는 얼마 전 "JP와 만나겠다" 는 말도 했다.

2주 전 필자가 YS를 만났을 때도 YS는 그 일단을 내비쳤다.

"JP는 요즘 DJ(김대중 대통령)를 무척이나 싫어한다는구먼. 쌓인 게 많대. 두 사람의 관계는 좀 더 잘 지켜봐야 해. "

심지어 "결국은 갈라설거요" 라고까지 했다.

JP의 메시지가 없었어도 그처럼 장담하듯 말할 수 있었을까.

정치 9단인 JP의 수(手)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준비성은 또 드러난다. YS와의 만남을 약속한 JP는 'JP대망론' 이란 것을 언론에 흘렸다. 그때가 2, 3주 전이다. 'YS를 업고 DJ를 설득한 뒤' 자신이 대권후보가 된다는 게 골자다.

JP는 대망론의 와중에 임동원 사퇴를 들고 나왔다.

나름의 논리와 정치철학까지 제시했다. 주변의 우려가 많았지만 굽힘이 없었다.

결국은 DJ-JP공조가 깨지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그리고 그 공조가 깨지는 바로 그날 YS는 "역사에 남을 쾌거" 란 논평을 냈다.

주목할 점은 DJ의 대응이다. 무엇을 믿고 'JP와 임동원' 중 임동원을 골랐을까. 물론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결국은 임동원마저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다.

아마도 DJ는 JP의 의도와 계획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것 같다. 오기 때문이었다는 일각의 분석으론 설명이 안된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분석도 납득이 안된다. DJ는 林장관을 사퇴시킨다고 해결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 것 같다. 어차피 JP가 제갈길에 들어선 것이라 본 것이다.

의외로 DJ는 일찍이 JP와의 공조파기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는 민주당 실세의원의 전언이다. 지난달 31일 필자와 만난 DJ의 장남 김홍일 의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날 자기가 DJ를 만나 "아버지, 걱정됩니다.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DJ는 이미 결심이 선 상태였다고 했다.

정치 9단들의 수(手)를 범인(凡人)이 알긴 어렵다.

그러나 'JP대망론 현실화' 에 대한 호기심을 누를 수 없다. 약속대로라면 JP는 멀지 않은 장래에 YS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대망론의 시나리오는 다음 수순을 'DJ설득' 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3金연합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JP가 DJ와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보는 건 성급할 수 있다. 3金바람이 다시 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연홍 편집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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