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풍경’ 의 <낮은 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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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풍경’의 제 11회 정기공연이 시작된다. 4월 20일(화요일)부터 5월 9일(일요일)까지 정보 소극장 무대에 올려지는 이번 공연의 작품은 <낮은 밤>이다. 30년 전에 섬광과 같이 지나갔던 일주일의 기억이 일평생 남긴 상처와 집착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핏 보면 불륜을 소재로 한 격정적 멜로드라마를 연상시키지만, 통속적 멜로에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인간에게 남기는 기억과 시간이 두텁게 해주는 기억의 굴레, 그 안에서 지난한 싸움을 벌여 오고 있는 인간의 현존에 대한 누구나 공감 할 수 있는 부분을 얘기한다.

<낮은 밤>은 ‘머리’의 기억이 아닌 ‘몸’의 기억에 대해 다룬다. 머릿 속에 저장된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왜곡되고 변질되며 잊혀진다. 하지만 수많은 감각 기관들과 직결된 몸이 품은 기억은 ‘그때 그 순간’을 ‘지금 이 순간’으로 회생시키며 머리가 지워버린 추억과 감각들을 저장하고 이를 다시금 소생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낮은 밤>은 과거의 젊음을 기억하는 몸, ‘지금 - 이 순간’ 상대방과 다시 교류되고 있는 쇠퇴한 몸, 그리고 다가올 죽음에 대항하는 몸의 현존과 이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응시하는 인물들의 시선들을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김현우 작, 유림 연출의 <낮은 밤>은 무대 공간을 캔버스로 이용하여 담아 본 연극 같은 그림, 한 폭의 그림 같은 연극을 보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 권오수, 문경희는 그 공간 속에서 60대 고령 화가의 사랑과 욕망의 풍경을 펼쳐 보일 것이다

<낮은 밤>은 현재 고령화 시대에 맞추어서,‘삶 밖으로 밀려난’ 노인들이 아닌, ‘주어진 삶 안에서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사랑하는’새로운 두 고령의 인물들을 통해‘노인’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1970년대 미국의 이미지의 연극들’을 정통한 연출가 유림은 이런 노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관객들이 비단 공연의 내용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 보고 경험하도록 유도하고자 한다. 배우들의 움직임, 동선, 시선은 기존의 3차원적 연극기법 뿐만 아니라 회화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색감, 빛의 각도, 2차원적 시각적 구도와 접목되어 첨예하게 구축되어 있다.

이는 “연극은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즉각적이며 새로운 현장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연출가의 신념에서 비롯된다. 관객들은 이처럼 한 폭의 ‘그림 같은 연극’, 혹은 ‘연극 같은 그림’을 통해, ‘삶-사랑-세월’이 첨예하게 엉켜서 완성시킨 두 인물의 ‘예술 작품’을 무대라는 ‘화폭’을 통해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줄거리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낮은 밤’을 이고 두 사람이 30년 만에 마주 섭니다.
30년 전, 한때 서로의 몸에 취해 세상을 잊었던 그들에게 낮은 또 다른 밤이었습니다.

30년 전. 섬광과도 같던 일주일동안 서로 몸과 마음을 섞고 헤어진 두 연인이 있다. 화가 김인식과 한선혜.

고작 일주일뿐이었지만 그 일주일은 짧은 불륜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삶을 너무나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제 세상과 담을 쌓고,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던 김인식 앞에 한선혜가 나타난다. 그것도 자신의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낸 지 며칠 안 돼서.

그들을 지배해온 과거는 30년 전 그들이 나눈 사랑의 온전한 형태를 욕망과 죄의식의 틀 속에 처참히 가두고 왜곡시켜 놓았으며 앞으로 그들 앞에 전개될 미래는, 이제 고인이 된 한선혜 남편의 존재 속에 그들은 계속 속박될 것이며 오로지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되돌릴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시간의 덫 속에 갇힌 그들 앞에 다시 ‘낮은 밤’이 찾아온다.

지나간 시간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칠흑 같은 어둠의 무게로 덮어주고 지금 이곳에 현존하는 너와 나, 그리고 서로를 갈구하는 우리의 몸을 일깨워주는 그 ‘낮은 밤’이.

(공연 문의: 02-453-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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