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L&C 청원 부강공장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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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이 기계는 슬리터(절단기)라고 해유. 이거 고장나면 ‘올스톱’이니까 애지중지 다뤄야 돼유~.”

16일 오후 충북 청원의 한화L&C 부강공장. 전자소재 라인 김기호(42) 계장의 설명을 ‘신참’ 두 명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그런데 이 신참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인다. 말씨도 충청도 사투리가 아니다.

“아직 다 이해하진 못하겠네예. 그래도 열심히 할테니 걱정마이소.”

두 사람의 신참 중 김만용(41)씨가 입을 열었다. 입사 15년 차인 그는 한 주 전까지만 해도 이 회사의 경남 진해공장 소속이었다. 전자소재와는 거리가 먼 인테리어필름 라인에서 일했다.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남 진해공장에서 충북 청원의 부강공장으로 옮겨 온 한화L&C 직원들이 바닥재 생산라인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바닥재의 매출 비중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 ‘효자 품목’이던 이 제품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은 여전하다. [청원=프리랜서 김성태]

한화L&C는 자동차부품·전자소재·건축자재 등을 만드는 회사다. 과거엔 바닥재(장판) 등 건축자재가 주력이었다. 하지만 사업구조가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바뀌고, 건설경기까지 나빠지면서 비중이 확 줄었다. 바닥재와 인테리어필름을 주로 생산하던 진해공장이 회사의 부담이 된 이유다. 이 공장이 회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57%에서 2008년 19%로 뚝 떨어졌다.

회사는 공장 합리화에 나섰다. 일부 생산직을 다른 공장에 전환 배치하고, 희망퇴직도 받았다. 지난해 7월엔 그간 쌓인 초과근무의 대가를 수당이 아닌 휴가로 지급하는 ‘선택적 보상휴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진해공장을 계속 끌고 가기는 무리였다. 1990년대 중반 700~800명이던 이 공장의 생산직은 100명 밑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노사는 지난해 11월 진해공장 생산 중단 협의에 들어갔다. 공장 직원들은 술렁였다. “이러다 모두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졌다. 진해공장 노동조합은 고민에 빠졌다. 사측도 형편이 뻔한데 전면전을 벌이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노조를 자진해산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처음엔 “그나마 노조도 없으면 어떻게 사측과 협상하느냐”는 반대가 더 많았다. 하지만 토론이 계속되면서 “그래도 회사를 한번 믿어보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2월 말 찬반투표에서 노조원들은 재적 83명 중 75명(90%)의 압도적 찬성으로 자진해산을 결의했다.

회사는 깜짝 놀랐다. 진해공장 직원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휴직 처리는 물론 정리해고 가능성도 완전히 닫아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회사를 믿는 직원들을 외면할 순 없었다. 강희준(45) 본사 지원팀장은 “어려워도 모두 함께 가자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회사는 생산직 83명 중 13명을 계열사인 한화케미칼로 이동시키고, 나머지는 충북 청원의 부강공장에 순차적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진해공장 사람들이 옮겨오면 초과근무를 못해 소득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부강공장 직원들도 동료를 흔쾌히 받아줬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강조하는 ‘신용과 의리’를 노사 모두 실천한 셈이다.

진해공장의 마지막 노조위원장을 지낸 허기욱(42)씨는 “회사를 믿었기에 노조 해산을 추진했고, 회사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노사가 극한 대립을 하는 시대는 지났고, 회사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며 “앞으로 현장에 돌아가 열심히 일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글=청원=김선하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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