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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구멍가게 벗어나야 엘도라도 찾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정보기술(IT)혁명 시대 출판의 앞날과 관련해 항용 음울한 전망을 내리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런 위기감을 정면에서 뒤집어버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랜덤하우스의 부사장을 지내고 지금은 고문으로 있는 저명한 편집자 제이슨 앱스틴이라면 말에 무시못할 무게가 실렸다고 봐야 한다. 최근 저서 『북 비지즈니스-출판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출판의 새로운 전성기를 창출해낼 것이고, 따라서 출판업은 새로운 황금시대의 문턱에 서있다. "

나도 앱스틴의 장밋빛 전망에 주저없이 공감을 하고 싶은 쪽이다. '출판유통의 실핏줄' 로 지난해 문을 닫은 일선서점들이 무려 1천1백여곳이고, 반품률이 50%로 치닫고 있는 '유통 준(準)공황 상황' 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출판의 꽃' 으로 불리는 단행본 시장(2조원)에 만화, 잡지, 중고생 참고도서류까지 포함한 국내 출판물 시장의 규모(연매출액)가 3조5천억원 내외 밖에 되지 않다는 사정을 도외시한 전망도 아니다.

장밋빛 전망은 '출판개념의 무한 확장' 에서 나온다. 그것은 당위론이다. 대세인 IT혁명이 대중시대와 만나 전대미문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면, 무엇보다 재래식 출판의 개념과 깨끗한 작별부터 해야 한다.

우선 대중사회 다중들의 입맛에 맞는 기획 상품을 개발해 시장의 저변부터 키워야 한다. 멜로.팬터지.스릴러 등 장르문학 개발을 포함한 비소설 분야의 대형기획이 편집자들의 연출력에 의해 연속해 등장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가 관건일 터인데, 해답은 두개에서 찾아진다. 편집자는 무엇보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포함해 '정보의 통합자' '정보의 해석자' 가 돼야 한다. 즉 '메가 에디터' 가 돼야 옳다.

이와 함께 출판의 기업화를 서둘러야 한다. '기업화 명제' 는 지난해 연매출액 1백억원을 넘는 메이저 출판사들 세 곳(민음사.중앙M&B.문학수첩)의 시장점유율이 각기 5% 내외 밖에 안되는 국내 출판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구멍가게' 에 불과한 영세성을 벗기 위해서는 현재의 가족회사 형태를 바꾸고 투명 운영이 전제돼야 한다. '기획상품' 의 홍수 출하로 고부가가치가 있음을 자본시장에 일단 시위를 한 뒤 상장(上場)을 통해 자본을 끌어들이는 수순이 유일한 정석이다.

단행본 출판사 중 상장회사가 단 한 곳도 없거니와, 현재의 구조에 안주하는 무사안일로는 'IT시대의 신 엘도라도〓출판' 의 등식은 없다고 봐야 한다.

현재 이런 명제에 비슷하게 근접한 회사는 민음사.김영사.시공사 세 곳이다. 모함(母艦) 민음사를 비룡소(어린이책).사이언스북스(자연과학서).황금가지(팬터지) 등이 떠받치고, 게임산업에까지 발을 뻗는 행보는 단연 발군이다.

김영사는 탈(脫)엄숙주의의 행보가 상대적으로 돋보이고, 시공사는 불과 10년새 만화 단행본 아동서적에 이르는 가지뻗기와 유통망에까지 관심을 보이는 전방위적 비즈니스 마인드가 꼽인다.

여기에 추격그룹에는 현재 가장 저돌적 마케팅을 보이는 '자음과 모음' 등이 지목된다. 물론 이런 평가는 다분히 기대치가 섞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이나 공허한 감상법이 아니다. 변화된 환경 속에 제조업 내지 지식산업으로서의 출판업이 살아남기 위한 거의 유일한 선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극과 극의 선택을 다시 확인해보자.

'출판 엘도라도를 찾아낼 것인가' , 아니면 '구멍가게로 자멸할 것인가' .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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