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기부양 이대로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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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경기 부양에 발 벗고 나섰다. 정부 지출을 10조원 더 늘려 조기 집행하고, 수출과 투자 활성화를 지원하는 등 경기 부양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가 전 분야로 확산.심화하고 있는 긴박한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수출이 안 되면 내수라도, 민간이 안 되면 정부라도 나서서' 성장 기반의 와해를 막아 보겠다는 정부의 뜻은 충분히 이해된다.

또 정책의 우선 순위를 제대로 마련한다면, 지금은 구조조정 노력을 좌초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한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정부의 경기 대책을 곰곰 뜯어보면 우선순위와 추진 방법, 또 수단에 있어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규제 완화보다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구조조정과 불확실성 제거는 '하겠다' 는 말뿐 구체적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투자 재활의 필수적 요소로 지적돼 온 규제 완화도 핵심적 규제는 '고려해 보겠다' 는 식이다. 그만큼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아직도 조정의 여지가 크다고 본다.

우선 정부의 여력은 경기 부양보다 구조조정에 집중돼야 한다. 구조조정의 지연과 대형 부실의 잔존 때문에 경제 불안이 이어지고,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순위를 구조조정으로 가다듬어 박차를 가할 때 경제적 충격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개혁 의지로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고, 구조조정이야말로 경기를 근원적으로 조기에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게 우리 모두의 결의가 아니었던가. 경제팀에 대한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을 흔들림없이 철저히 추진해야 한다" 는 7일 김대중 대통령의 주문은 아무리 되풀이해도 지나침이 없다.

또 수출과 투자 위축이 불경기의 핵심적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활성화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아닌 규제 완화를 근간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정부 지원, 그것도 수출 기업에 대해 10억원씩 지원하는 식의 금융 지원은 직접적 지원 대상인 업종이나 기업의 활성화에 그치고, 약효가 쉽게 떨어진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그러나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 활성화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민간기업의 경제 의욕과 자율적인 경영 결정을 북돋우는 규제 완화에 의한 수출과 투자의 활성화야말로 그 회복력이 강하고 지속 가능성도 크다.

정부가 의도하는 것이 당장의 경기 회복이 아니라 수출과 투자를 활성화해 언젠가 회복될 세계 경기를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백분 활용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라면, 규제 완화에 전념하는 길이 바른 선택일 것이다.

30조원을 한 분기 내에 집중 투입하는 식의 정부 지출은 물가 상승 심리를 자극할 뿐 아니라 경기지표가 호전되는 경우에도 단기에 그치기 십상이다. 민간 내수가 활성화해 그 회복세를 정착시키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감세 조치를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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