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야, 너 왜 기름범벅이니 … ” 실종자 가족들 통곡·오열·실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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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천안함 함미 내부에서 발견된 승조원들의 시신이 임시 안치소가 마련된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로 운구되고 있다. 실종자들의 시신은 독도함으로 옮겨진 뒤 신원 확인을 마치고 헬리콥터를 이용해 해군 2함대사령부로 이송됐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호야, 네 얼굴이 기름투성이야. 우리 애가 기름 속에서 나왔나봐. 우리 애가 왜 저래. 우리 애가 새파래.”

15일 천안함 함미에서 발견된 아들 서대호(21) 하사의 시신을 확인한 어머니 안민자(52)씨는 울부짖었다. 서 하사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10분쯤 헬기 편으로 평택 2함대 사령부에 도착했다. 사령부 내 의무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씨는 하늘에 헬기가 보이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오열했다.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네가 왜 이 차(운구차)를 탔노. 아이고, 아들아… 아들아….”

태극기에 싸인 아들의 싸늘한 주검은 서서히 의무대로 옮겨졌다. 안씨는 “내가 우리 아들 보면 알아요. 우리 아들 봐야 돼”라고 소리치며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날 부대 내 임시 숙소에 머물던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의 시신이 한 구, 한 구 발견되면서 통곡하고 절규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미 어느 정도 아들들의 죽음을 예견했다. 하지만 막상 시신이 도착하자 가족들은 억눌렀던 슬픔을 쏟아냈다. 20~30분 간격으로 시신 3구씩을 실은 헬기가 2함대 사령부에 속속 도착하면서 한 가족, 한 가족씩 비탄에 빠졌다.

오후 6시19분. 서 하사 다음으로 이상준(20) 하사의 시신이 헬기에서 내려왔다. 서 하사 어머니의 절규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 하사의 어머니 김미영씨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씨는 “상준아. 아이고 우리 새끼 어떡해”라며 손으로 땅바닥을 쳤다. 김씨의 통곡은 너무 처절해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는 시신을 향해 달려가다 진정시키려는 가족과 군인들에 가로막혔다. 그때까지 묵묵히 시신을 바라보던 아버지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애간장 녹인 하루=오전 9시 인양 작업이 시작된 뒤 오후 4시쯤 첫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실종자 가족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날 오전 TV를 통해 인양작업을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긴장되고 떨린다”고 했다. 인양 시작 10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함미를 초조히 지켜보던 한 가족은 “내 아들이 저 안에 있을 텐데. 내가 여기 있을 순 없잖아”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전 예상보다 인양 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되자 사랑하는 아들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정국 대표는 이날 시신 수습 보도가 속속 이어지자 “인양 과정에서 발견된 시신의 신원이 공식 확인된 바 없다”며 “옷을 빌려 입고 다니다 사고가 났을 수도 있는데 명찰만 보고 시신이 발견됐다고 보도하면 가족들에게 타격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후 10시 도착한 문영욱 하사의 시신은 확인 결과 김경수 중사로 밝혀졌다. 문 하사의 시신이 함미 제독소에서 새로 발견되면서 군당국이 처음 문 하사로 알려졌던 시신을 김 중사로 확인해 정정한 것이다.

이날 시신이 발견된 정종율(32) 중사는 원래 다른 함정(5번 고속함)에 타도록 인사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 중사의 매형은 “정 중사의 부모님은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라고 가족들의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오후 4시쯤 서대호·방일민·이상준 하사 등의 시신 수습 소식이 임시 숙소에 전해지자 해당 가족들은 오열하며 통곡했다. 일부 가족은 실신하기도 했다.

평택=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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