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무명용사, 69년 만에 가족 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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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미군 병사의 신원이 근 70년간 편지봉투에 남아 있던 타액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 확인됐다. 이 덕에 무명용사로 분류됐던 이 병사의 유해는 마침내 유족들의 품에 안기게 됐다.

69년 만에 고향 땅 미시간에 묻히게 된 주인공은 1941년 말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 숨진 제럴드 리먼(당시 18세·사진) 미 해군수병이다. 전함 오클라호마호에 승선해 있던 그는 당시 428명의 동료와 함께 숨졌다. 막심한 피해를 본 오클라호마호도 침몰, 숨진 장병들과 운명을 같이 했다.

리먼 수병의 유해는 그동안 하와이 국립묘지에 무명용사로 분류된 채 묻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군 전쟁포로·실종자확인 합동사령부(JPAC)에 의해 신원이 확인됐다고 USA 투데이가 14일 보도했다.

17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리먼은 “먼저 나라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는 평화시여서 그의 부모도 입대를 허락했다. 그러나 입대 1년 뒤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감행됐다. 전함 오클라호마호에서 기관병으로 근무하던 그는 당시 일본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일본 전투기의 첫 번째 목표물이었던 오클라호마호는 병사 대부분이 잠을 자다 공격을 당했다. 일부 병사들은 뒤집힌 선체 내에서 7일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 숨졌다.

리먼에 대한 신원확인은 그의 조카인 페기 저메인에 의해 시작됐다. 저메인은 리먼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할머니가 2005년 평생 소원이던 아들의 유해를 찾지 못한 채 숨을 거두자 대신 삼촌의 시신찾기에 나섰다. 그는 수소문 끝에 삼촌이 하와이 호놀룰루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지에 90여 명의 다른 병사들과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진주만 공격 당시 살아남아 태평양전쟁 무명용사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온 레이 에모리(88)도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JPAC 신원감식팀은 두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여 무명용사 묘지에 있던 유해를 발굴해 2006년 리먼 등 5명의 신원을 잠정 확인했다. 신원감식팀은 리먼이 훈련소와 부대에서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 64통을 가져와 DNA 조사를 실시했다. 감식팀은 처음에는 핵 DNA 감식법을 사용했지만 신원규명에 실패했다. 이후 미토콘드리아 DNA감식법을 통해 리먼이 편지 봉투를 붙이기 위해 사용한 타액을 분석, 여동생 바버라 헤리스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JPAC의 알렉산더 크리스텐슨 팀장은 “미토콘드리아 DNA감식법이 앞으로도 전사 미군의 신원확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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