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기부양 제2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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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연초에 이어 또 다시 경기부양책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에는 제한적 경기조절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경기부양의 메뉴에는 변함이 없다. 예산과 자금을 조기 집행하고 증시부양을 위해 연기금을 사용하며 세금감면을 통해 투자를 촉진하는 등의 처방은 올해 초 내놓은 경기부양책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경기상승국면이 하반기가 아니라 연말에 가능할 것이라는 것만 다르다. 그것도 미국 경제가 4분기부터 살아날 경우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반년 만에 더더욱 커진 셈이다.

이처럼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내놓는 경기부양은 대내적인 불확실성을 더욱 커지게 한다. 연초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내세운 경기부양책이 성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이제 경제주체들은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내놓는 경기부양책은 경제주체들의 불신을 더욱 커지게 해 유동자금이 주식시장에, 그리고 투자로 유입되기 힘들어 진다. 더구나 지금은 연초에 비해 물가불안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도록 유도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체질을 바꾸는 구조조정이라는 처방만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키우고 안정적인 성장기조를 구축할 수 있다.

외환위기로 허약해진 우리 경제체질에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각 부문의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확실히 추진하는 것이다. 섣부른 경기부양은 퇴출돼야 하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생명만 연장해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게 할 뿐이다. 아무리 제한적 경기조절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더라도 경기부양은 경기부양이다.

더구나 경기부양책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부작용이 큰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산과 자금의 조기집행은 예산운용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재정적자의 폭을 궁극적으로 확대시킬 것이다.

또한 연기금 주식투자는 연기금 여유자금의 균형 있는 운용에 차질을 빚게 할 수 있고 나아가 투자위험을 증대시킨다.

조세감면의 확대를 통한 투자확대 또한 조세감면의 고착화와 함께 세수감소를 크게 해 건전재정운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머지 않아 정부가 내놓을 가능성이 큰 세율인하나 소득세 경감 등도 과세기반이 취약한 우리의 여건으로는 경기회복으로 이어지기보다 세수감소만 크게 할 뿐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때다. 대우자동차.현대.서울은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추면 현재의 불확실성은 미래로 이어지고 고착화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갈등은 용납될 수 없다. 여야의 극한 대립, 정부와 언론 대립, 보수와 진보의 대립, 이해집단간 대립 등등 우리 정치와 사회는 온통 대립 투성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하루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런 대립정국에 묻혀버렸다.

더구나 내년에는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더할 정치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지자체선거와 대통령선거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구조조정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정치적.사회적 갈등구조하에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경기부양에만 의존할 경우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아르헨티나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고 원유가격이 안정되고 반도체가격이 오르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安鍾範(성균관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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