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아파트 문화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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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 우리 나라에는 너무 많다.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와 같은 수준의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 각 가정이 치르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예컨대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의 중산층 가정이 40평 짜리 아파트를 마련했다고 치자.

그리고 그 가격을 평당 천만원, 즉 4억원이라고 잡아 보자. 이 돈의 기회비용을 1년 단위로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은 어이없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호텔 투숙비용과 엇비슷

현재 이자율이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이 돈을 금융기관에 정기예금 형태로 넣어두면 연 7%의 확실한 금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돈으로 따지면 연간 2천8백만원의 이자 수입이다.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조금 더 재테크에 능하다면 그 두배인 연 14%의 금리 혹은 그 이상을 확보할 수도 있다. 연간 5천6백만원 이상의 돈이다. 여기서는 두가지 가능성의 중간쯤인 연 10%의 이자 소득을 확보했다고 치자. 돈으로 계산하면 연간 4천만원이다.

연간 4천만원의 수입을 12로 나누면 월 3백33만원이다. 이를 다시 30으로 나누면 하루 약 11만원의 수입이 계산된다. 이 돈으로 아파트 대신 호텔에 투숙해 생활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돈으로 최고급 호텔에 예약도 없이 걸어 들어가 하룻밤을 묵고자 하면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중상위급 호텔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호텔이 장기 투숙자에게 엄청난 할인을 제공하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최고급 호텔에서 생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하루가 아니고 한달도 아니고 일년을 묵는다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조건이면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 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의 중산층 가정이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라면 호텔의 스위트 룸은 그 가족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간을 얼마든지 제공해준다.

만약 계산이 이렇다면 4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대가로 집안 청소하는 귀찮은 일과 관리비나 가구 장만과 같은 추가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고도 호텔에서 종업원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사우나와 헬스 등의 부대시설을 무료로 즐기는 쾌적한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특히 요즘같이 부동산 가격이 안정돼 아파트에 대한 투자가치가 없으면 더욱 그렇다.

이제는 문제를 한번 뒤집어 보자. 최근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는 대부분 1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다. 또한 아파트 한 동에는 대부분 4개의 입구가 있고, 입구마다 두 세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므로 아파트 한 동에는 최소한 15×4×2=1백20세대가 산다. 아파트 단지 하나의 규모를 작게 잡아 네 동으로 친다면 한 단지에 4백80세대가 산다는 계산이다. 각 세대가 평균 4인가족이라면 대충 1천9백20명이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 상황을 호텔에 대입하면 엄청난 규모의 대형 고급 호텔이 항상 만원인 상황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투숙하고 있는 각각의 세대가 치르는 비용이 그렇고, 관리하는 객실의 숫자가 그렇고, 투숙객 규모가 그렇다.

그런데 아파트와 호텔의 부대시설은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가. 왜 아파트는 호텔과 같이 손님, 즉 주민을 위한 공동의 편의시설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가. '프런트' '로비' '짐 보관' '헬스 및 사우나, 그리고 수영장' '관혼상제를 위한 공간' '응급실' '유아방' 등의 공간을 왜 호텔같이 쾌적하게 직접 운영하지 못하는가.

***쾌적한 편의시설 갖춰야

아파트 단지의 구성과 기능이 주민의 복지를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정을 재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마치 현재 주차장 면적이 일정한 비율이 돼야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듯이 앞으로는 주민공동체의 구성에 필요한 호텔 수준의 복지서비스 기능이 포함되지 않으면 새로운 아파트를 지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앞서 계산해 보았듯이 경제적인 기준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보면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공동시설이 제대로 운영돼야만 아파트 주민 사이에 '공동체 의식' 이 자연스럽게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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