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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2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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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굉멩이의 어느 마을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여튼 포실한 농촌이었음에 틀림없다. 마을 한가운데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논이 드넓게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가 오가면서 구해둔 중농 정도의 농가로 들어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문간에 연이어서 외양간이 있었고 그 앞에 길쭉한 나무통의 속을 판 여물통이 있었다. 바로 건너편은 부엌이었고 그 통로를 지나야 마당이 되었다. 주인집네는 그 안쪽에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이 두 칸이었다. 우리가 빌린 것은 문간방이었는데 그동안 쓰지 않고 버려 두었던지 방 구들이 꺼져 있었다. 아버지가 주인 아저씨와 새로 방에 구들돌을 깔고 짚 섞인 흙을 다져 바르며 고치는 동안 우리 식구는 외양간에서 지내야 했다. 그 집 소는 전쟁 통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깨끗이 치우고 흙바닥 위에 멍석을 깔았는데도 소똥 냄새가 대단했다. 며칠 지나니까 제법 구수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외양간의 앞 기둥과 벽에 못을 박아 모기장을 치고 나란히 누워 잤다.

도회지 사람들의 피란살이란 별 수가 없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 나다니면서 물건들을 직접 식량과 바꿔 오고는 했던 것 같다. 가게에서 팔던 갖가지 종류의 구두는 매우 유용했을 것이며, 재봉틀.자전거.옷가지들과 귀금속이 맨 나중에 사라졌을 것이다. 피란이 다시 남쪽 먼 고장으로까지 이어지자 아버지는 몽땅 팔아서 현금을 확보하여 트럭을 세 내어 장사에도 나서게 된다.

나는 근처 개울에 가서 송사리도 잡고 개구리도 잡으면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개구리의 다리를 찢어 모아다가 풀에 꿰어서 구워 먹는 재미도 배웠다. 시골 아이들은 여름철이면 모두다 고무줄을 넣은 무명 팬티 하나만 입고 벌거숭이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가 어떤 어머니인가. 나는 절대로 웃통을 벗고 나다녀서는 안 되었다. 우리 식구가 빌려 살던 집 건너편에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도시의 아이인 듯한 계집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마 그 애의 부모가 동생과 함께 할머니네 집에 맡겨 두었을 것이다. 그 집에서는 참외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름이 깊어가자 집 앞에 멍석을 펴놓고 함지에 가득 참외를 따다 놓고 팔았다. 함지에는 참외나 찐 옥수수가 있기 마련이었고 아이의 할머니가 툇마루에 나와 앉아 있곤 했다. 어느 저녁녘에 어머니는 나와 누나들을 데리고 가서 참외를 사주었다. 그때 할머니와 함께 나와 앉아 있던 계집아이를 알게 되었다. 아이는 검은 무명 팬티가 아니라 누나들처럼 '간타후쿠'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코고무신을 신었다. 할머니는 옛날에 광산을 다니던 영감을 따라 함경도나 평안도의 산간에 살던 얘기를 했고 어머니는 만주 얘기를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내 가까워져서 우리 아이들은 모깃불을 피워 놓은 할머니네 툇마루 앞 멍석 위에서 바람을 쐬며 밤 늦게까지 놀곤 했다. 마른 쑥이 타는 냄새와 별이 한꺼번에 우수수 쏟아질 것 같던 밤 하늘은 아주 가깝게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멍석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계집아이와 북두칠성 찾기 내기도 하고 별똥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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