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만능 엔터테이너'로 뛰기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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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아나운서는 여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다. 탤런트보다 기품이 있어 보이고 전문인으로서의 이미지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요즘 아나운서들 사이엔 '만능 엔터테이너만이 살 길' 이라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말하자면 아나운서들이 연예인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이 SBS다. 최근 자사 아나운서들의 프로필과 화보를 곁들인 안내 책자를 제작한 것을 비롯해 예능.교양.드라마 등 장르를 막론하고 제작진이 아나운서들을 적극 활용하도록 '캐스팅 매니저 제도' 까지 도입했다.

SBS의 유협 아나운서팀장은 "이제 아나운서도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방송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풍토가 됐기 때문" 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MBC 이윤철 아나운서부장도 "내년 공채부터는 쇼 프로나 대형 오락 프로의 메인 MC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아나운서를 선발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이제 아나운서들에게 금기시되는 장르는 없다. 시트콤에 카메오로 출연하는가 하면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맡아 진행하기도 하고 명절에 오락 프로그램에 단체로 출연하기도 한다. 옛날이었다면 그런 '외도' 를 했다간 선배들로부터 "무슨 딴따라 같은 짓이냐" 는 불호령을 듣기 십상이었다.

이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광고 수익 때문에 시청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방송사의 현실과 관계가 깊다. 시청률에 진행자 한명이 미치는 영향이 막강한 현실에서 개편 때만 되면 제작진들은 자기 회사 아나운서를 제쳐놓고 한창 뜨는 탤런트나 가수를 영입하기 위해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런 풍토에서 아나운서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아나운서들의 성역이라 여겼던 뉴스 진행도 속속 기자 출신들이 장악해 가고 있는 것도 무시못할 현실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대학에 들어간 신참 아나운서들은 과거처럼 뉴스 진행만 고집하지 않고 입사 때부터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을 꿈꾸기도 한다. 'TV 동물농장' 등 5개의 예능 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SBS의 윤현진 아나운서는 "입사 때부터 예능 프로가 적성에 맞았다" 고 말했다. 김범수 아나운서도 SBS '모닝와이드' 에서 신참 연예인이 맡았을 코너의 리포터로 나서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연예인과 경쟁하기보다는 분야별로 전문화를 추구해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처럼 진정한 방송인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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