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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영혼 찢기는 아픔이거나 짜릿하고 속시원한,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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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문학동네
332쪽, 1만3000원

“대체 어쩌다가, 나는 자연스러운 죽음에 반쯤 홀렸는가? 내 나이 고작 51세인 것을.”

지은이가 스스로 이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책을 다 보고 서문을 다시 읽을 때였다. 염려하지 마시라. 지은이의 글은 신랄하고, 아주 조금 괴팍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리 염세적이지는 않다. 남들이 매달리고 싶어하지 않는 ‘죽음’이란 주제에 집중했을 뿐이다. 쉰 한 살의 소설가가 쓴 이 책은 자신의 삶과 가족사를 되돌아본 회고록인 동시에 ‘삶과 죽음’을 겪는 우리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탐구한 독특한 에세이다. 왜 죽음이냐는 물음에 그는 미국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말을 인용해 들려준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그런데도 죽음에 관해 쉽게 말할 수 없으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고.

지은이가 이런 책을 쓰게 된 데에는 97세의 나이에도 자신보다 더 펄펄하며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집착을 과시하는 아버지가 큰 역할을 했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아버지의 지칠 줄 모르는 몸 이야기다”고 밝혔을 정도다. 생명력이 펄펄 끓어 넘치는 열 네 살짜리 딸 내털리도 한 요인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20년째 지독한 요통을 다스리며 산다. 파티에 가서도 의자를 먼저 찾고, 치약을 사러 가는 일도 실존적 여정으로 여기는 “비참한 불운아”다. 몸에 대한 강박적인 관심의 근원이 얼추 엿보인다.

그는 아버지와 10대 딸에 대한 일화를 재치 있게 풀어놓다가도 그는 과학이론과 통계를 예를 들며 ‘결국 인간은 같은 동물로 태어나 같은 경로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이야기로 빠진다. “시간과 맞서 맹렬하게 싸우는 전사”인 아버지 얘기 뒤에 “65세 이상 인구의 5~8%가 치매를 앓는다. 80대에는 절반이 앓는다”는 통계로 돌아가는 식이다. 인생, 결국은 몸의 여정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싹할 정로로 서로 다른 동물들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모두 같은 동물들이다. 포대기에서 관을 향해 움직여 가는 우리의 몸은 세상에 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만큼이나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엔 냉소와 애틋함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명사들의 유언을 인용한 대목에서도 특유의 페이소스가 묻어나 있다. “마침내 그것이 왔는가, 그 유명한 것이”라던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부터 “주여, 오탈자를 용서하소서!”(필라델피아 최초 신문 발행인 앤드루 브래드퍼드), “신의 축복이 있기를, 젠장”(미국의 풍자만화가 제임스 서버)까지….

책의 결론은 애증의 대상인 아버지를 향한 말에 담겨있다. “유전자가 불멸하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버지는 이 사실에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저는 그 사실에 짜릿하고 속이 시원해요.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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