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월드컵과 지적재산권

세계 1위의 유명상표인 코카콜라의 상표가치는 8백38억달러로서 1백조원에 달하고 있고, 국내 1위의 상표인 휴대전화 애니콜의 상표가치는 5천5백73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디자인.상표 개발 뒤처져

우리나라가 지난해에 외국으로부터 기술 수입을 하고 지불한 로열티는 30억달러인데 반해 기술 수출의 대가로 받은 로열티는 2억1백만달러에 불과해 전체적인 기술 무역수지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기술.디자인.상표 등 지적재산권은 새로운 가치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21세기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됐지만 부산을 중심으로 운동화 제조업체가 호황을 누리던 때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운동화 제조업체들은 자체상표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주문자 상표 방식으로 외국 회사의 하청을 받아 외국의 유명상표를 부착해 납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약삭빠른 일부 제조업체들은 습득한 기술을 이용해 자체상표를 개발하는 대신 외국 유명상표를 도용한 가짜 외제 운동화를 제조해 소비자들을 현혹한 결과 쉽게 돈을 벌기도 했다. 가짜 외제 운동화에 대해서는 당국에서 간헐적인 단속이 있었으나 제조업자나 상인 모두 상표권자인 외국기업에 비해 영세하다는 이유로 선처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도 고소득층은 값 비싼 진짜 외국상표 운동화를 선택하고, 저소득층은 값싼 가짜 외국상표 운동화만 찾게 돼 우리 상표를 부착한 운동화는 외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 시장에서조차 설 땅이 없었다.

그리고 운동화 제조업체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벌어들인 돈을 자체기술.디자인.상표 등의 개발에 투자하기보다 부동산.증권 등에 투자해 시세차익이나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제는 값싼 노동력의 면에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를 당할 수가 없으니 외국회사의 하청을 받던 제조업체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상점에 가보면 중국 등지에서 주문자 상표 방식으로 제조한 외국 유명상표 운동화가 판을 치고 우리나라 자체상표를 부착한 운동화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자체기술.디자인.상표 등의 개발과 보호를 게을리했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이웃나라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기술.디자인.상표개발에 힘을 기울여 미즈노.요넥스 등 자국의 상표를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88서울올림픽이라는 똑같은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이태원 등지에서 아직도 우리 고유의 상표가 붙은 물건은 찾기 어렵고 싸구려 가짜 외제상품이 넘쳐 흐르고 있다.

심지어 미국 무역대표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나라를 지적재산권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해 자국의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해 감시하겠다고 경고하는 창피를 당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특허청에 출원된 특허.실용신안.의장.상표 등 지적재산권의 총 출원건수는 28만2천6백73건으로 1999년의 23만1천28건에 비해 22.4% 증가했다.

***무단도용 방지 대책 급해

한편 우리나라 국민이 지난 한 해 동안 특허협력조약을 통해 해외 출원한 건수도 1천5백73건을 기록해 99년의 8백35건에 비해 84%나 대폭 증가해 세계 1백8개 회원국 가운데 11위를 기록했다. 대법원도 전문법원인 특허법원을 신설했고,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 지적재산권 전담재판부를 설치해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분쟁의 신속하고 적절한 처리에 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노동생산성보다 지식생산성에 우리 경제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 지식기반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은 기술.디자인.상표 등 지적재산권의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개발한 지적재산권이 무단히 도용되는 일이 없도록 보호.육성하는 정책을 개발.시행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는 우리 고유의 기술.디자인.상표를 세계에 알릴 또 한번의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서울올림픽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국민과 정부가 합심 노력해야 하겠다.

한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