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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약탈해 간 문화재 돌려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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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엘긴의 마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들의 일부. 영국 외교관이었던 엘긴 백작이 19세기에 신전에서 떼어내 본국으로 들여왔다. 그리스는 이 문화재의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19세기 초 오스만제국에 파견된 영국 대사 엘긴 백작은 신전의 부조들을 떼어내 본국으로 보냈다. 신전 4개 면에 걸쳐 약 160m 길이로 장식돼 있던 부조 중 절반가량이 영국으로 갔다. ‘엘긴 마블(대리석)’로 불리는 이 부조들은 그 뒤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리스는 1930년대부터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그러다 2000년 이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스에는 마땅히 보관할 곳도 없다”는 영국 측 주장에 자극 받은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모조품 전시와 관련, “부조들이 대영박물관과 이곳 중 어디에 있는 게 옳은지 관람객들로 하여금 생각해 보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적 여론 조성으로 영국을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그리스 정부는 다른 유물을 빌려주는 조건을 제시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영국은 “전 세계인의 문화재”라는 논리를 펴며 거부하고 있다. 영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에 한정한 그리스의 임대 요청도 묵살했다.

◆거세지는 약탈 문화재 반환 움직임=그리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식민지 국가들보다 더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데다, 약탈당했던 나라들의 위상이 높아진 까닭이다. 문화재를 많이 약탈당한 국가들끼리 국제 협의체를 만들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청나라 청동 토끼머리상·쥐머리상 프랑스의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이 소유하고 있는 청나라 때 유물로 19세기에 유출됐다. 청동 12지상 중 토끼머리상과 쥐머리상이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 중국 정부는 “약탈 문화재”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전담 팀까지 만들어 약탈 문화재 반환에 적극적이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15일 “약탈된 중국 문화재를 보관 중인 국가들에 공식적으로 문화재 반환 요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탈·도굴 등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한해 소유권을 주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중국에서 빼앗긴 동물 청동상이 파리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게 계기가 됐다. 쥐와 토끼머리 청동상은 19세기 말 베이징의 원명원에서 약탈된 것으로 돼 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국민들 사이에 약탈 문화재 반환 여론이 뜨거웠다. 현재 중국의 문화재 태스크포스팀은 미국·영국·프랑스 등을 돌며 약탈 문화재 실태를 파악 중이다.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과 로제타스톤 독일의 베를린 신박물관과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각각 보관돼 있는 이집트의 국보급 유물. 이집트는 이 유물들에 대한 반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집트는 지난해 프랑스로부터 고분 벽화를 돌려받았다.

이집트도 해외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이다. 이집트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고분벽화 5점을 돌려받은 데 이어 지난달 말 3000년 전 목관 문화재 한 점을 미국으로부터 되찾았다. 문화재 관련 협력 단절이라는 강수와 집요한 협상의 결과물이다. 이집트는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로제타스톤과 독일에 있는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도 되찾는다는 계획이다.

한편 약탈 문화재 반환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는 이집트·그리스·중국·페루 등 30개국은 다음 달 카이로에서 문화재 반환을 논의할 국제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들 국가는 이 회의에서 서방 국가들에 반환을 요구할 문화재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서울=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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