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웍스 야심작 '슈렉' 칸 영화제 초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이집트의 왕자' '개미' 로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오랜 아성을 위협해온 드림웍스가 일을 저질렀다. 5월 18일 미국 개봉을 앞두고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사회를 연 신작 3D 애니메이션 '슈렉' 은 동화 뒤집기와 디즈니 비꼬기, 히트 영화의 패러디 등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다음달 초 열리는 제5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애니메이션으로는 1953년 디즈니의 '피터팬' 이후 48년 만의 일이다.

'슈렉' 은 기존 동화의 모든 법칙을 깨는 영화다. 일반적으로 '왕자와 공주' 류의 동화는 '왕자가 공주에게 키스하자 모든 마법이 풀린다' 는 공식을 따른다. 그러나 탑에 갇힌 공주 피오나를 구출하는 사람은 왕자가 아니라 뾰족귀가 달린 괴물 슈렉이다.

'미녀와 야수' 처럼 막판에 마법이 풀려 '프린스 차밍' 으로 변신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건네주는 손수건을 걸레로 쓰며 키스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는 괴물 슈렉을 보며 공주는 경악한다. "도대체 기사 맞아?(What kind of knight is he?)"

그렇다고 공주는 멀쩡한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엽기적인 그녀' 에 가깝다. 고음으로 노래하는 그녀를 따라하던 새는 음이 올라가면서 몸이 부풀어오르다 끝내 절정 부분에서 뻥 터져버린다. 나뭇가지에 새 발목만 남는 '엽기성' 에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이뿐인가. '매트릭스' 의 유명한 공중 정지 장면을 패러디해 직접 몸을 날리기까지 한다. 해질 무렵이면 추녀로 변하는 마법은 슈렉의 진정한 사랑으로도 끝내 풀리지 않는다.

동화 뒤집기는 동화를 주 소재로 삼아온 디즈니에 대한 '비틀기' 이며 이는 유쾌한 웃음으로 이어진다. 폭군 파쿼드의 성(城)은 디즈니랜드를 연상케 하는 테마 파크다.

파쿼드를 견디다 못해 슈렉의 늪으로 몰려든 동화 주인공들은 피노키오.팅커벨.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 모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관객과 친숙한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이 디즈니와 불화 끝에 결별한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발군이다. 마이크 마이어스.카메론 디아즈.에디 머피 등이 각자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슈렉의 지저분한 행동은 '오스틴 파워' 에서 마이어스가 보여준 '화장실 유머' 를 떠올리게 하며, 피오나의 액션은 디아즈의 근작 '미녀삼총사' 로 연결된다. 쉴새 없이 지껄여대며 익살을 부리는 당나귀는 당나귀의 탈을 썼을 뿐 원맨쇼를 하는 에디 머피다. '개미' 가 우디 앨런의 영화라면 '슈렉' 은 에디 머피의 것이라 할 만하다.

'슈렉' 은 어린이를 주 타깃으로 하는 디즈니와 달리 철저히 성인 취향이다. 세계프로레슬링(WWF)을 연상시키는 레슬링 장면, TV 녹화장에 자주 등장하는 팻말 들기, '드래건 하트' '인디애나 존스' '매트릭스' '와호장룡' 패러디하기 등의 전략은 기억을 자극해 자아내는 웃음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준다.

'누가 누가 많이 기억하나' 에 따라 재미를 느끼는 정도가 좌우될 듯. 디즈니 왕국의 독점을 깨뜨린 역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국내 개봉은 7월.

LA=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