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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해저드' 번역 '도덕적 위험'이 정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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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 중에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본인과 대리인 모형(principal-agent model)'을 통해, 경제주체들의 비양심적 행위에 따른 사회적 병리현상이 정보의 비대칭적인 분포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내주는 핵심 코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모럴 해저드'를 '도덕적 해이'라고 번역한 데 있다.

왜 미국인들은 모럴(moral)을 위험(hazard)한 것으로 간주했을까? 만약 그들도 우리처럼 도덕이 해이(또는 느슨)해지거나 타이트해질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면, 그들은 모럴에다 위험(hazard) 대신에 해이(relaxation)라는 단어를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험시장에서 보험 가입자들의 비양심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모럴 릴랙세이션'이 아닌 '모럴 해저드'를 선택했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도덕을 해이해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위험한 대상으로 보았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노자(일명 도덕경)'의 저자인 노담(老聃)은 만물의 근원에 존재하는 보편적 원리를 '도(道)'라고 정의했다. 보편적 원리란 '자식들은 부모님께 정성을 다해 효도해야 한다'와 같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노담 얘기의 정수(精髓)는 '도(道)'보다는 '덕(德)'에 관한 해석에 있다. 그는 "도를 체득함으로써 도가 지니는 뛰어난 작용, 가령 겸손.유연.양심.질박.무심.무욕 등을 몸에 익히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곧 덕이다"라고 설명했다.

도덕에 관한 그의 설명은, 우리에게 '도덕이라는 잣대야말로 매우 위험한 논리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그 이유는 그가 말한 도덕의 숭고한 가치를 실천한다는 것이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헌법 앞에서 국가와 국민을 향한 도덕적 책임을 맹세했던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과, 고객들의 예금원금과 이자보장의 도덕적 책임을 맹세했던 은행원들의 모럴 해저드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도덕에 관한 한, 필자도 자신이 없다.

결론적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유난히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는 결코 일류사회가 아니다. 그보다는 순자의 성악설에 기초한 시스템으로 인간에 내재된 모럴 해저드를 막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치밀하게 설계해 나가는 사회가 오히려 일류사회다.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모럴 해저드의 해결 방안도 도덕의 재무장이 아니라 경제주체들이 구조적으로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의 확립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럴 해저드는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도덕적 위험'으로 번역해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다.

강용구 공주대 영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