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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늘려서 ‘집값 안정’ 꾀해 입주 때까진 투기 관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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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3일 오후 서울 개포동 주공1단지 재건축조합. 최근 강남구청이 용적률 등을 정한 재건축 밑그림(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조합 사무실에는 조합원과 주택 수요자들의 문의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 온다. 조합 관계자는 “대개 앞으로 재건축 추진 일정 등을 묻는 전화”라고 귀띔했다.

이달 초 4수 끝에 안전진단을 통과한 인근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비슷한 분위기다. 매수세는 없지만 주변 중개업소 등을 통해 재건축 움직임을 묻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주변 중개업소들은 “안전진단 통과 이후 조합설립은 언제 되겠느냐 등을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재건축 시장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안전진단 요건을 완화하고, 용적률을 법정 상한선까지 허용하는 등 재건축 규제를 풀고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수요가 많은 도심 주택 공급을 늘려야 집값이 안정된다는 판단에서다.

그 덕에 노무현 정부의 규제 정책으로 멈춰 섰던 재건축 단지들이 다시 움직인다. 2003년 조합 설립인가까지 받았다 겹겹의 규제로 사업을 중단했던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는 지난해 말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이 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규제가 잇따르면서 사업성이 떨어지자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늘어 2003년 이후에는 사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집값 안정, 단기적으론 투기 우려=집값을 안정시키는 데는 공급만 한 게 없다. 2008년 말 서울 잠실 주공 재건축 단지 2만여 가구가 차례로 입주하면서 강남권은 물론 분당 등지의 집값·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였다. 기업은행 김일수 부동산팀장은 “수요가 많은 강남권에서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재건축을 활성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집값이 불안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강동구 고덕동 D공인 김모 사장은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바람이 다시 불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시장을 크게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연구위원은 “주택시장이 가라앉고 있는 데다 강남권에서 값싼 보금자리주택이 많이 공급되면서 시장 안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예전과는 시장 상황이 달라 재건축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 투기가 성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더라도 지금부터 입주 때까지는 강남권 주택시장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재건축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고 있어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장희순 교수는 “강남권은 교육환경 등의 지역 특성상 전세 수요의 분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며 “민간 사업이라고 내버려두지 말고 정부나 서울시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봄바람 맞은 건설사들=재건축 공사 수주를 노린 대형 건설사들도 바빠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주택사업본부장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중단으로 시행사-시공사 구도의 주택 사업은 맥이 끊겼고 최근 들어 공공공사 발주까지 크게 줄어들었다”며 “이 때문에 안정적으로 일감이 확보되는 재건축 사업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건설 도시정비사업팀 이영종 팀장은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현재 69명인 재건축·재개발 담당 임직원 수를 더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서는 대형 건설사 외에 시공 능력 순위 20위권 밖의 중견 건설사들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올해 굵직한 재건축·재개발 수주 물량이 많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조합 설립 전에 시공사를 선정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로 새로 시공사를 선정해야 하는 단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당 경쟁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한다. 재건축 컨설팅 업체인 J&K부동산투자연구소 권순형 소장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출혈 경쟁을 하는 업체가 나타나면서 새로 계약하는 일부 사업장은 단위 면적당 공사비가 낮아지는 추세”라며 “이 때문에 이전에 공사 계약을 체결한 재건축 사업장의 조합원들이 가격을 내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함종선·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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