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정치유혹 뿌리친 이석연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4.15 총선을 앞둔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이석연 변호사를 찾아갔다. 당의 명(命)을 받아 그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한 것이다.

김 의원은 "위원장으로 활동한 뒤 강남.서초 지역구나 비례대표를 하시라"고 제안했다. 이 변호사는 "나는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이 변호사는 완강했다"고 기억한다. 위원장은 나중에 김 의원에게 돌아갔다.

이 변호사에 대한 정치권의 유혹은 약 10년 전 시작됐다. 맨처음 그에게 다가간 세력은 동교동이었다. 동교동은 1995년 7월 말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앞두고 새 얼굴을 모으고 있었다.

이 무렵 이 변호사는 얼굴이 꽤 알려져 있었다. 그는 94년 변호사 개업 후 위헌청구 등 이른바 '공익 소송'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95년 7월 국회의원들이 정략적으로 짜놓은 선거구에 대해 위헌심판을 청구했다. 그 해 12월 그는 이겼다.

동교동은 "당선이 유력한 서울 지역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변호사는 "정치는 안한다"며 거절했는데도 동교동은 8월 초순 발기인에 그를 넣었다.

이 변호사는 성명을 내고 "참여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는데 포함시켰다"며 탈퇴했다. 같은 호남 출신인 정동영.천정배.신기남.유선호 의원 등이 그때 국민회의를 통해 정치권에 진입했다.

선거철만 되면 이 변호사에게는 투표 안내서처럼 공천 제안이 왔다. 2000년 총선 때 그는 경실련 사무총장이라는 중량급 시민운동가로 커 있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유혹했으나 그는 뿌리쳤다. 2002년 8월 종로 보선 때는 한나라당에서 "우리 당 공천이면 떼어놓은 당상"이라며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정치행(行)을 마다한 이력을 보면 이 변호사의 몸속에는 '한국정치 저격수'라는 유전자가 숨어 있는 것 같다. 한국정치는 그에게서 여러 차례 직격탄을 맞았다.

95년 선거구 획정 위헌이 그렇거니와 97년 11월 말 외환위기 직후 국회는 의원 세비를 슬쩍 올리려다 없던 일로 해야 했다.

이 변호사가 "국가부도라는 난국에 자신들의 세비를 올리려는 것은 입법권의 남용"이라며 헌법소원을 빌려 폭로했던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이 변호사의 견제는 수도 이전 위헌으로 또 한번 획을 그었다. 앞으로도 어떤 것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만약 이 변호사가 정치권의 출마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지금 수백명의 의원 중 1인으로 기억되기 쉬울 것이다. 그는 때론 한 사람의 고집스러운 '비(非)정치인'이 다수의 정치인보다 얼마나 더 생산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