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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달랐다, 백낙청 vs 안병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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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계간지는 지식인의 사랑방이다. 우파의 사랑방에 특별한 손님이 초대된 셈이다. 대화는 1월 14일 『시대정신』 회의실에서 열렸다. 초대를 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초대에 응해 직접 상대 진영 한복판까지 들어간 백 교수의 결단을 우선 높이 평가하고 싶다.

대화 주제는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국민통합적 인식은 가능한가’였다. ‘국민통합적 인식’은 우리 시대의 화두다. 그만큼 우리가 ‘불통(不通)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뜻일 게다. 두 원로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남북통일 등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의 요소를 두루 거론했다.

안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선진화 이념을, 백 교수는 민주주의와 통일 담론을 설파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산업화 세력에 대한 평가 등에서 서로 의견이 갈렸지만, 엇갈린 차이 그대로 조화를 이뤘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숨가쁘게 진행된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왔기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렸다. 선진화라는 용어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좌파, 통일이라는 말만 하면 움츠러드는 우파와는 확실히 달랐다.

안 교수가 통일의 가치와 당위성을 적극 긍정하는 대목에서 대담은 절정을 이뤘다. “6·15 공동선언이 평화통일 지향적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그것을 선언한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했던 역사적 저류(底流)를 탄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복지국가와 사상의 자유에 대한 긍정도 안 교수에게서 나왔다. 백 교수는 선진화와 통일이 맞물려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대담의 사회를 본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는 “제가 좀 혼란스러운 것은 두 분이 견지해 온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서로 바뀌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웃음)”이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우리 사회에 ‘불통의 벽’이 높이 쌓인 데는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심장 지식인’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당파적·이념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형성하는 이가 ‘강심장 지식인’이다. 상대방 가치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조율하려는 ‘유약파 지식인’과 대비된다.

두 ‘유약파 지식인’은 갈등을 넘어 소통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대화는 두 사람이 펼치는 언어의 예술이 될 수 있다. 그 비결 아닌 비결은 소박했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 대화의 핵심 기술이다. 고수(高手)는 달랐다. 만나니 풀렸다. 더 많은 향연을 보고 싶다. 우리 정치판의 고수는 어디 있을까.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