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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우수교사 모셔오기’ … 강남권만 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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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지역 중·고교의 평교사 발령이 있었던 지난달 12일, 은평고(서울 은평구)의 한경연 교장은 “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사내용 중 초빙교사 명단을 서둘러 확인했지만 은평고에는 한 명도 발령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문을 연 은평고는 올해 4명의 실력 있는 교사를 초빙해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한 교장은 과학고와 강남 지역 학교를 수소문해 초빙 대상 교사를 물색했다. 그는 “몇몇 교사에게는 우리 학교에 지원하라고 은밀히 연락도 했다”면서 “아무래도 변두리에 있는 학교인 탓에 아무도 응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강남 3구’ 중 하나인 서초구의 서울고는 초빙교사 모집에 너무 많은 교사가 몰려 애를 먹었다. 물리의 경우 교사 1명을 초빙하는 데 6명이나 지원했다. 일부 교사들은 석·박사 학위와 연구 결과물까지 잔뜩 챙겨서는 학교로 찾아와 “뽑아만 준다면 담임도 맡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서울고는 전체 교사 95명의 20%인 19명을 손쉽게 초빙교사로 채웠다. 학교 관계자는 “교통이 편리한 데다 학교 이름값 덕분에 교사 초빙에 유리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서울을 비롯, 전국 공립 초·중·고교에 초빙교사제가 본격 도입됐다. 학교들이 우수 교사를 초빙해 교육의 질을 높이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교사들이 특정 지역과 학교만을 선호하는 탓에 우수 교사들의 쏠림 현상만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3월 교원 정기전보 내용을 분석한 결과 서울의 일반 공립고 초빙교사 173명 중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고교에서만 43%인 74명을 데려갔다. 서울고가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방산고(송파)도 10명이나 됐다. 그러나 강북구와 관악구, 강서구, 성동구는 구내 학교들을 모두 합해도 초빙교사 수가 한두 명에 불과했다. 은평고처럼 1명도 초빙하지 못한 학교도 6개였다.

이 같은 특정 지역 쏠림 현상은 진학률 등 학교 평판과 출퇴근 등 근무 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에는 교사들이 지원을 꺼리기 때문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소위 ‘물 좋은’ 강남지역이 학생 가르치기에 수월하고 경력 관리에도 좋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초빙교사제를 통해 중랑구에서 송파구로 학교를 옮긴 박모 교사는 “현실적으로 우선 근무여건이 좋은 ‘A급’ 학교를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의 교장들은 “초빙교사가 별로 필요 없는 학교에만 우수교사가 몰리고 우리처럼 우수교사가 절실한 학교는 외면받는 현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6월 갑자기 초빙교사제를 실시하라는 교과부 지침이 나와 준비가 미흡했다”고 해명했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과) 교수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정 인기지역을 초빙교사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우수교사가 낙후지역에 지원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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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상 기자

◆초빙교사제=공립학교가 잘 가르치는 교사를 초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교단에 경쟁력을 불어넣겠다는 현 정부의 핵심교원정책 중 하나로 2007년 시범 도입돼 올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초빙과목과 교사 수는 학교장이 정한다. 각 학교가 11월께 초빙공고를 내면, 교사가 자기소개서·인사기록카드 등을 작성해 지원한다. 일반 공립고는 교사 정원의 20%, 자율형 공립고는 100%까지 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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