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일류' 타령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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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산 1백조원, 고객 수 1천4백만명을 내세우는 국민은행이 자랑하는 상품으로 슈퍼정기예금이 있다. 지난달 1일 시판한 이 상품은 하나의 통장으로 추가입금이 가능하고 고객들이 만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김상훈 국민은행장의 이 상품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金행장은 "다른 은행은 전산 시스템이 뒷받침하지 못해 이런 상품을 만들고 싶어도 못한다" 고 자랑했다. 국민은행의 전산 시스템이 국내 최고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파업 때 고객들이 다른 은행을 이용하며 낸 수수료를 전산작업을 통해 고객통장에 입금한 주택은행과 달리 국민은행은 고객들이 창구에 찾아와 영수증을 제시해야 환불하고 있다. 국민은행측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객이 환불받았는지 알 수 없다" 면서 "이미 받은 고객이 있어 중복지급의 우려가 있으므로 일괄적인 전산처리는 어렵다" 고 밝혔다.

슈퍼정기예금에서 보듯 고객 돈을 끌어들이는 데 쓰는 전산 시스템은 '일류' 일지 모른다. 하지만 파업으로 불편을 끼쳐 사과하는 뜻에서 고객에게 수수료를 돌려주는 데에는 전산을 가동하기 어렵다면 수수료를 돌려줄 적극적인 의사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돈 내주는 전산 시스템은 3류' 라는 얘기인가.

고객에 대한 안내도 문제다. 국민은행은 슈퍼정기예금의 수신액이 1조원, 2조원을 넘을 때마다 홍보자료를 돌렸다. 그러나 파업이 끝난 뒤 수수료 환불을 알리는 홍보는 거의 없었다. 14일 기자가 찾아간 서울 명동 국민은행 본점 영업부에는 올들어 바뀐 세금우대제도와 자기앞수표 양식 등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10개도 넘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수수료 환불과 관련한 안내문은 없었다.

1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金행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민은행은 지난해 창립 이래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며 "총수신.총자산 등 거의 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고 자찬했다. 하지만 다른 시중은행이 부실기업에 물려 처지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1등이 된 것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에서 자유로우려면 국민은행 스스로 고객을 왕으로 여기는 서비스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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