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 '검은돈 협업' 환자엔 싸구려 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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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A약국은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 건물 1층으로 이사했다.

제약사 영업사원이 "위층의 B내과 의원과 얘기가 다 돼있다. 고가 약 처방전을 받아 저가 약으로 조제하는 방법으로 월 수백만원 수익을 보장하겠다" 고 제의해와서다.

이 약국은 현재 월 5백만원 이상의 '추가 이익' 을 보고 있고 10%씩을 의원과 영업사원에게 사례비로 준다. B내과는 주사기.거즈 등 소모품을 영업사원으로부터 무료로 받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병의원-약국-제약사간의 삼각 불법거래를 알선하는 브로커들이 이처럼 활개치고 있다.

브로커들은 주로 제약사나 약품 도매상의 일부 영업사원들. 지난해 말 모 제약사의 영업사원 두명이 서울.경기지역에서 다섯차례 삼각 커넥션을 알선하다 적발돼 사직하기도 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의료계 파업이 끝난 뒤 브로커에 의한 커넥션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 서울 C구의 한 내과의원은 처제가 운영하는 같은 건물내 약국과 짜고 친인척 20여명을 가짜 환자로 만들었다. 5명씩 4일 단위로 계속 처방해 매월 의원과 약국이 얻는 부당이득은 1백만원 이상씩이다.

병의원과 약국이 손잡고 이렇게 가짜 환자를 만들어 의료보험료를 빼먹는 형태의 담합은 예상보다 많이 퍼져있다는 게 업계의 말이다.

제약사가 병의원에게 자사 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10~40%의 리베이트(수수료)를 주는 불법행위도 여전하다.

모 제약사 영업사원 金모 대리는 "상당수의 동네의원.종합병원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면 바로 처방약이 바뀐다" 면서 "병원 쪽에서 현금뿐 아니라 향응 등 온갖 대가를 요구하기 일쑤" 라고 실토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曺在國)보건산업팀장은 "이런 행위는 의약품 오.남용을 막자는 의약분업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며 이렇게 빠져나간 돈은 결국 환자 부담으로 돌아온다" 고 지적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는 K제약 등 상장 제약사 35곳의 일반관리비를 조사한 결과 매출액의 31.3%를 차지했다고 30일 밝혔다.

관계자는 "제약사의 관리비가 타 업종에 비해 3배 가량 높으며, 매출액의 10~15%가 리베이트로 나갈 것" 이라면서 "제약사에 대한 세무관리와 위반 의.약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변철식(邊哲植)보건정책국장은 "개정 약사법이 통과하면 의약분업감시단.보건소 등이 지속적으로 담합을 적발하고 사법당국의 수사와 세무관리를 강화해 리베이트를 근절하겠다" 고 말했다.

신성식.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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