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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신화가 된 과학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역사적으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에게는 항상 '신화' 가 따라다닌다.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갈릴레오에게는 유명한 신화가 둘 있다.

그가 20대 중반에 피사의 사탑(斜塔)에서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려 이 둘의 속도가 같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임으로써,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물리학의 결정적 오류를 통쾌하게 드러냈다는 것이 그 첫번째다.

피사의 사탑 이야기는 그의 제자 비비아니가 쓴 전기에 처음 나오는데, 다른 역사적 증거들은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둘째 신화는 갈릴레오가 천동설을 옹호하다 종교재판을 받아 유죄를 선고받은 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갈릴레오의 제자들에게조차 알려져 있지 않던 얘기다.

18세기 계몽사조 시기에 갈릴레오를 종교적 박해 속에 진리를 지킨 순교자로 만들려던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근대 과학의 대표적인 '신화' 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뉴턴의 애견(愛犬)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다.

이 개가 촛대를 넘어뜨려서 뉴턴이 수십년간 기록한 노트를 전부 태웠지만, 뉴턴은 개를 나무라지 않고 태연했다는 일화다. 그렇지만 전혀 역사적 근거가 없다.

제일 유명한 신화는 뉴턴의 사과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뉴턴이 흑사병 때문에 학교가 휴교를 해서 집에 머무르던 기간에, 정원의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상식처럼 돼있는 얘기지만 뉴턴 자신은 사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전혀 없다.

사과 이야기는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뉴턴이 죽던 해에 처음 언급했는데, 그는 이를 뉴턴의 조카 캐서린에게 들었다고 덧붙였다.

과학사학자들은 뉴턴의 사과에 대해 견해가 나뉜다. 뉴턴의 저작과 편지를 편집했던 화이트사이드는 이 일화를 근거 없는 것으로 일축했지만, 뉴턴에 대해 가장 권위있는 전기를 쓴 웨스트폴은 뉴턴이나 그의 조카가 거짓말을 했을 이유를 생각하기 힘들다는 근거를 들어 이를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튼 뉴턴의 집에 사과나무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사과나무는 19세기 초엽 심한 폭풍에 쓰러졌고 당시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이를 잘라서 의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원래 나무의 줄기 일부가 접붙이기로 살아나서 지금은 다시 번듯한 사과나무가 됐다.

최근 한 물리학자는 탄소 연대측정법과 유전자지문을 사용해 이 사과나무의 연대를 측정하기도 했다.

이휘소 박사가 원자탄 제조를 꾀하던 박정희 대통령을 돕기 위해 귀국하려다가 미국 정보원들에 의해 암살됐다는 얘기는 우리의 신화다.

과학사가들은 이휘소 박사가 전공하던 입자물리학과 원자탄은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고 이 얘기를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얘기가 열강들 틈에서 약소국의 설움을 안고 살아가던 우리의 정서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신화라고 본다.

과학의 신화는 어렵고 전문화한 과학과 대중을 매개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 신화는 대중의 정서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잘 사라지지 않는다.

갈릴레오나 뉴턴에 대해 강의하면서 학생들이 믿던 신화가 별 근거가 없는 것임을 보여줘야 하는 나는, 그래서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사과를 보다가 '바로 이거야!' 하고 중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신화는 과학적 발견이 이뤄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데 적합하지 않다.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으며, 그래서 "패러데이는 젊었을 때부터 하루 15시간씩 수십년간 실험을 함으로써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에서 유럽 최고의 물리학자가 됐다" 는 얘기를 하곤 한다.

물론 이 얘기 또한 신화에 가까운 것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홍성욱 (토론토대, 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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