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심한 '요직 상한제'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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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한동(李漢東)총리가 올 2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특정 지역.학교 출신의 요직 상한제' 를 발표했다.

3급 이상 고위직의 경우 출신 지역이나 학교가 같은 인사들을 한 부처에 30~40%가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정지역 편중인사 시비가 빗발친 데 따른 고육책으로 이해하면서도 발상 자체가 너무 안이하고 기계적인데 놀랍고 실망스럽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이제 출신 지역이나 학교가 같은 인사들이 한 부처에 몰려 있을 경우 능력에 상관없이 승진과 이동 때 불이익을 당할 판이다.

침대 길이에 몸을 맞춰 끊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를 연상케 하는 치졸한 발상이다.

이 정부 들어 호남지역 편중인사 시비가 그치지 않았다. 그 때마다 정부는 출신 지역 비율을 들먹이며 결코 편중인사가 아니라고 항변해 왔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억지춘향격 비율제를 도입하는가. 인사란 순리에 따라 각 부처의 원칙대로 공정하게 단행하면 된다.

이른바 '힘있다' 는 부처의 핵심 자리마다 특정지역 인사들이 앉아 '끼리끼리' 전횡하는 현상을 바로잡는 일이 더욱 급하다.

능력과 자질이 떨어지는데도 출신 때문에 벼락 승진.영전하는 사례와 인사 때마다 불거지는 실세 입김설이 사라져야 편중인사 시비가 사라질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약속한 국정쇄신책이다. 金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나 李총리의 국정과제 발표가 곧 쇄신책의 전부인지 그게 궁금하다.

金대통령은 노벨상 수상을 전후해 경제실정이 정부 잘못이라고 '반성' 했고, 성난 민심을 확인하면서 각계 의견을 들어 국정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때문에 국민은 金대통령의 거시적 국정 철학과 밝은 미래를 여는 획기적인 구상을 기대하고 있다. 고작 '강한 정부' 'DJP공조' 와 '출신별 요직 상한제' 정도라면 실망이 클 것이다.

개각이 예정돼 있는 만큼 그와 발맞춘 혁신적 내용의 국정쇄신책을 다시 한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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