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박광서교수 "평신도로서 할 일 더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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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최근 한 불교계 여론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재가불자' 로 꼽힌 박광서(52.서강대.사진)교수는 물리학자다.

그는 불교신도들의 모임인 '재가연대' 대표로 지난해 달라이 라마 방한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불교와 물리학은 안 어울리는 듯하지만 사실은 가장 잘 어울리는 종교와 학문입니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 이르면 그게 바로 불교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

박교수는 물리학에 앞서 불교를 만났다.

문학.역사책을 즐겨 읽던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는 원효대사의 삶을 그린 책을 읽고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대사가 산속을 걸어가다 도깨비를 만난 장면. "당연히 대사가 신통력을 부려 도깨비를 물리치거나 죽일 것" 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긴 순간, 대사는 도깨비와 함께 한바탕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고, 선이 악을 물리쳐야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만 강요받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원효대사의 가르침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더군요. 생각치도 못했던 장면을 읽고는 '왜 이런 가르침을 여태까지 알지 못했는가' 라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솟구치더군요. "

원효의 무애(無碍)사상을 공부하면서 철학으로서의 불교에 빠져들었고, 불교학생단체인 룸비니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신행생활에 들어섰다. 불교계와 접하면서 또 다른 분노가 생겼다.

"당시 불교계가 정화니 뭐니 하면서 어수선한데다 스님들도 문제가 많았었어요. '불교는 훌륭한데 우리 불교계는 왜 이렇게 형편 없나' 는 안타까움이 어린 마음에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어린 시절의 분노는 곧 '불교계 개혁' 이라는 박교수 평생의 화두, 과제가 됐다. 당시 출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좋은 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출가해도 늦지않다" 는 생각에서 대학에 진학했다. 물질문명의 시대에 '물질의 근본' 을 탐구한다는 취지에서 물리학을 택했다. 미국유학 9년까지 마치고 귀국해서도 출가를 생각했다.

"출가하지 않고 평신도로 할 일이 더 많다" 는 한 스님의 만류로 출가를 포기했다.

박교수는 실제로 출가한 승려 이상의 왕성한 활동, 불교계 개혁운동을 벌여 왔다.

1988년 '교수불자연합회' 를 만들었고, 91년에는 재가불자 모임인 '우리는 선우' 창단멤버로 참여해 불교의식 생활화운동 등으로 활동의 폭을 넓혔다. 95년 재가불가 모임인 '재가회의' 를 만들었다. 재가연대의 모체다.

"궁극적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사회에 확산하고자 노력하는 겁니다. 불교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사회를 밝고 맑게 하자는 거죠."

글=오병상,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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