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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작업 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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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요즘 조지 처치(55) 교수는 연구 시간의 반을 실험실에서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합성 생명체(Synthetic Life)’ 작업에, 나머지 반은 개인 지놈 프로젝트(Personal Human Genome Project)에 투자하고 있다. 그중 합성생명체 분야는 연구계 라이벌인 크레이그 벤터(64) 크레이그벤터연구소장과 누가 더 빨리 생명체를 창조해 낼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가장 근원적 창조작업이다. 윤리적 논란에 휩싸일 공산이 크고 이미 비판하는 이들도 적잖다. 그는 “연구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정책·윤리적 연구를 병행해 왔다. 논란이 예상되는 일이라고 지레 그만두기엔 이 연구가 가져올 혜택이 너무도 크다”고 강조했다. 인간에게 염기서열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안 뒤 이를 완벽하게 해독하겠다는 열정을 가졌고, 35년간 이를 위해 한 우물을 파왔기에 오늘날의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는 “옳은 비전이든 그렇지 않은 비전이든 끊임없이 추구할 비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엔 타당치 않아 보이던 비전이라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게 창조성의 기본이라고도 말했다. 지놈의 대가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놈 시퀀싱’ 기술을 보유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가 2007년 세계 최초로 설립한 개인지놈 유료 분석회사 ‘놈’은 이듬해 35만 달러(약 5억1000만원)를 받고 첫 개인지놈 지도를 USB에 담아 의뢰인에게 전달했다. 지놈 시퀀싱이란 유전물질(DNA)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늘어서 있는지 분석하는 작업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공 생명체 작업

조지 처치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개인정보와 함께 연구용 라벨을 이마에 붙인 사진을 올려놓았다.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재미난 연출이다. 작은 사진은 처치 교수가 12일(현지시간) TED 콘퍼런스에서 강연하는 모습. 손에 든 것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리보솜’ 모형이다. 리보솜은 세포 안의 리보핵산(RNA)과 단백질의 복합체다. [TED 사진작가 제임스 덩컨 데이비드슨 제공]

“대장균을 기초로 단백질 생명체를 실험실에서 만들어 내는 연구를 한다. 이르면 1년, 늦어도 5년 안에는 기초적 생명체를 디스크 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윤리적·정책적 타당성 검토는 연구 시작 훨씬 전부터 했다. 위험해 보이기 전에 정책적 고려를 마쳐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생명체는 실험실에서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위험성은 당분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미리 윤리적·정책적 고려를 해놔야 한다 . 논란이 뻔한 일이라고 해서 지레 그만두기엔 인공 생명체가 가져올 혜택이 너무도 크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약물이나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식물성 기름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TED에 관해

“나는 다른 과학자들보다 상당히 통섭적이고 융합적인 방법으로 학문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그는 생명공학과 컴퓨팅을 결합해 손쉬운 시퀀싱 방법을 만드는 데 세계적 권위자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분야가 융합되는 콘퍼런스는 내 기준으로 봐도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전혀 몰라서 두렵거나 불편한 분야도 들어보면 무척 흥미롭다. 내 전문 분야와 전혀 무관한 것을 계속 들으면서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뇌가 활발히 작동하는 느낌이다. 앞으로의 이 모임이 창조적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근육도 운동해야 잘 쓸 수 있듯이 뇌도 운동을 해줘야 한다.”

#창조성의 원천에 관해

“어떤 것에 대해 흥분하고, 알아내고 싶다는 동기 부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10대 소년 시절 DNA에 대해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각 개인의 DNA를 완전히 해독해주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기술이 부족한 당시에도 DNA 패턴 중 일부를 출력해 같은 것을 찾으려고 이리 접고 저리 접어봤다. 비전을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한 뒤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풍토가 과학과 비즈니스엔 도움이 된다.”

#경쟁자인 크레이그 벤터에 대해

“우리는 서로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협력한 적은 없다. 목표가 비슷하지만 접근 방법은 아주 다르다. 추구하는 목표가 어쩜 그렇게 비슷한지는 신기할 정도다. 과거 미생물 지놈 연구와 인간 지놈 연구에서 개인의 지놈을 모아 분석하는 개인 지놈 연구, 요즘은 실험실에서 생물체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 목표가 같았다. 유전학 분야에서 세계 어느 다른 연구자와는 이 중 두 가지가 겹치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목표에서 빠짐없이 경쟁하니 희한한 일이다. 벤터는 나에 대해 ‘그는 연구를 하기 위한 기술을 만들어 내고 나는 그 기술을 활용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대로 핵심을 지적한 말 같다.”

#개인 지놈 프로젝트는 이런 것

“지놈 연구 중 유일하게 국가 또는 회사·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모든 정보가 제한 없이 인류를 위해 공개되는 프로젝트다. 이렇게 한 이유는 미국, 또는 세계 각국의 유전학자뿐 아니라 세계 모든 과학자의 두뇌를 모아야 인간 지놈 분석에 관한 창조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인도의 컴퓨터공학자, 아프리카의 수학자도 지놈의 패턴을 분석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의 유전자 분석기술 수준은 세계적이다. 한국도 공동연구에 큰 관심을 보인다.”

롱비치(미 캘리포니아)= 최지영 기자

TED 콘퍼런스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지식인들이 1984년부터 매년 모여 창조적·지적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하고 교감하는 자리다. IT 전문가 리처드 솔 위먼 등이 창설해 2001년 새플링 재단의 크리스 앤더슨에게 인수됐다.



●운영 주체: 비영리기구 새플링 재단

●매년 2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변 휴양지 롱비치에서 개최

●참가비 6000달러. 사전 심사 통과해야

●의학·과학·정보기술(IT)·엔터테인먼트·건축 등 다양한 분야

●인터넷 생중계 비용: 995달러

●같은 기간 생중계를 보며 토론 즐기는 TED액티브 참가 비용: 3750달러

●영국 옥스퍼드서 여는 TED글로벌과 인도에서 여는 TED인디아 자매 행사도

●역대 주요 연사: 전 미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 부통령 앨 고어, U2 리드 싱어 보노,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 음악인 허비 행콕 등

●해마다 TED상 수상자를 선정해 10만 달러 상금과 함께 세상을 바꾸겠다는 소원을 지원해 줌

●올해 주요 연사: 영국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 건축계 거장 데이비드 록웰, MS 창업자 빌 게이츠,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 우쿨렐레 연주가 제이크 시마부쿠로, 하버드 의과대 조지 처치 교수, 요리사 댄 바버와 제이미 올리버 등

☞◆지놈(Genome)=유전자(진·Gene)와 염색체(크로모좀·Chromosome)를 합성한 말로, 개인이 가진 DNA 전체를 뜻한다. 지놈 유전자 정보는 네 가지 염기서열(A·T·G·C)의 순서로 나타난다. 30억 개 염기서열 가운데 약 99 %는 같고 1%가 달라 개인별 형질 차이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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