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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사계] "사죄 대행해 드려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베이징(北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쉽게 배우지만 자주 듣지 못하는 중국어가 있다.

'미안합니다' 란 뜻의 단어 '두이부치(對不起)' 가 바로 그것이다.

길을 가다 몸을 부딪쳐도, 얄팍한 저울로 과일 값을 바가지 씌우려다 들켜도 중국인은 좀처럼 두이부치를 말하지 않는다.

일부 외국 기업인들은 중국 고용인의 잘못을 나무래도 이들이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 자신의 뜻을 중국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과에 인색한 중국인들의 행태에 대한 해석 또한 구구하다.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일반론적인 해석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와 관련, 미안하다고 하면 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두이부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다.

또 문화혁명 당시 두이부치라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죽음과 직결됐던 전례가 있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습관이 형성됐다는 역사론적 설명도 있다.

그러나 이젠 이같은 해석들도 옛말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베이징 인민라디오방송국은 중국인들이 잠자리를 펴는 오후 10시쯤 '오늘 밤 공개적으로 사과합니다' 란 프로그램 방송을 시작했다.

세상을 뜬 아버지에 대한 효도 부족을 사과하는 아들에서, 성적이 부진한 제자를 모진 말로 꾸짖어 상처를 주었던 선생님의 사과 등 다양하다.

지난해 8월에는 톈진(天津)에 사과를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대리 사과 업체' 까지 탄생했다.

이 업체의 총경리 류칭(劉靑)은 중국인들이 심리적으로 받는 스트레스 중 상당수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된다는 점을 발견하고 회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직원은 8명. 변호사.강사.심리학회 회원 등 달변의 40대 중년 남녀들이다.

이들은 20위안을 기본 비용으로 대신 사과의 말을 전한다. 때로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미안함을 표시하는 꽃이나 작은 선물을 준비하며 사과의 난도가 높을 경우 가격이 올라간다.

3개월 영업에 80여건의 대리 사과 업무를 수행했으며 이 중 80% 정도 성공했다고 한다.

직접 사과하는 게 예의지만 과거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어려웠던 중국에 이런 회사까지 탄생한 것은 중국이 한참 달라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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