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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집이야기] '8월의 크리스마스' 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교통체증으로 엄청난 시간을 소모하고도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 한구석에는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찾고 싶은 기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지. 그러나 오랜 시간 걸려 돌아간 고향이 너무나 변해버려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이젠 더 많다.

더욱이 서울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은 기대를 가지고 가 볼만한 고향도 없다. 크게 바뀐 서울의 모습에서 어릴 때 뛰어놀던 흙먼지 나는 골목길을 기억해 내기란 정말 어렵다.

지나버린 날들에 대한 추억은 꼭 아름다워 그리운 것은 아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그리 아름답지도, 추억할 만하지도 않은 서울 변두리 동네와 서민적인 집을 볼 수 있다.

비가 오면 처마에서 흘러내리는 낙숫물을 바라보고,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으면서 마당에 씨를 뱉고, 온 식구가 마루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한구석에 옹기종기 장독들이 늘어서 있는 마당 가운데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쌀을 씻고, 파를 다듬는다.

마당 한편을 가로질러 쳐둔 빨래줄 때문에 지나다닐 때마다 빨래에 걸리기도 한다. 살기에 불편하고 허름한 집이다. 그러나 이런 허름한 집과 동네를 중심으로 느리게 펼쳐지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는 듯 해 아릿한 마음이 된다.

'내 마음의 풍금' 에서는 좀 더 본격적인 고향의 시골집을 보게 된다. 툇마루에 걸터앉은 채 방안에 있는 사람과 건네는 이야기는 마주보고 앉아 하는 이야기와 분위기부터 다르다.

또 펌프질로 퍼낸 물로 마당 가운데서 푸푸거리며 하는 세수는 왠지 더 시원해 보인다. 툇마루에 나와 앉아 보는 달과 별은 또 어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쳐다보는 것과는 그 푸른 빛조차 다르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마당에 내어 논 평상에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정다운지. 60%가 넘는 국민이 공중에 매달린 아파트에 사는 요즈음, 불편하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 푸근하던 이런 집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치스런 생각인가.

신혜경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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