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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우리가 물이 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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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은교(1945~)'우리가 물이 되어' 부분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후략)



'우리가 물이 되어'는 이미 고전화된 작품이다. 물과 불의 교차적인 이미지. 물은 깊은 골짜기에서 아래로 흘러 강물을 이룬다. 그 골짜기에 한 옹달샘이 있는데 노자는 그 샘물을 만들어내는 여자를 '현빈'이라고 이름지었다. 신비하고 신비롭구나 암컷의 아랫문이여. 이를 일러 흔히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한다. 현빈을 죽이고서야 우리가 어떻게 물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으랴.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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