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닷컴사 '헐값' 외국사 투자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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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정보기술(IT)업체에 대한 외국계 기업의 '공습' 이 시작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휴렛패커드(HP).인텔.컴팩.퀄컴 등 세계적인 IT업체들이 잇따라 국내 벤처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동안 투자가 주춤했던 소프트뱅크코리아도 적극적인 투자로 방향을 바꿨다.

외국기업이 이렇게 적극적인 투자를 하려는 이유는 국내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어 기술력있는 유망한 벤처기업도 상대적으로 '싼 값' 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MS.HP.인텔 등 외국계 IT업체와 국내 인큐베이션업체인 사이버펄스네트워크(CPN)는 16일 국내 벤처기업 발굴을 위한 'KIVI(Korea Internet Venture Incubation)' 프로그램 설명회를 열고 국내 IT 벤처기업에 2천만달러(약 2백27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MS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1년 동안 현금만 2천만달러를 투자하는 것" 이라고 전제하고 "소프트웨어(SW)와 각종 장비지원을 포함하면 실제 투자금액은 현금의 2~5배 정도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신생업체와 IPO(기업공개) 전 단계에 있는 회사를 10여개사씩 선정해 인텔과 HP의 하드웨어(HW)와 마이크로소프트의 SW, 사이버펄스네트워크의 투자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장비업체인 컴팩코리아는 최근 국내 벤처업체에 1억달러(1천1백여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컴팩코리아는 인큐베이팅.지분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할 계획이며 벤처기업 2백여개를 대상으로 투자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 이동전화 칩을 생산하는 퀄컴은 지난 14일 '퀄컴 벤처' 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퀄컴벤처는 CDMA 기술력이 우수한 한국 등 전세계 벤처기업에 4년간 모두 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콧 맥닐리 회장도 지난 9월 말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2억5천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한국법인인 소프트뱅크코리아는 올 3월부터 8월까지 시큐어소프트.한국전자인증 등 13개 업체에 4백89억원이나 투자했지만 9~10월엔 1개 업체(50억원)에 투자하는데 그쳤었다. 소프트뱅크코리아는 그러나 지난 15일 인터넷 업체인 보부넷에 10억원 투자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3~4개 업체에 1백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문성욱 투자심사역은 "현재 국내 IT기업의 거품이 빠져 투자하기에 적기라고 판단, 투자할 회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고 말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외국 기업의 투자활성화를 위해 2백여개 외국계 IT기업이 참여하는 외국기업 분과위원회를 만들 계획이다.

협회의 신재정 사무국장은 "현재 벤처캐피털의 인터넷 기업에 대한 투자비율이 10%일 정도로 닷컴기업의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외국기업의 투자는 환영할 만한 일" 이라면서도 "하지만 국내업체의 투자가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외국업체의 활발한 투자로 자칫 국내 인터넷 시장의 대부분을 외국기업에 잠식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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