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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 Metro] 신세대 여자 소방관 신혜숙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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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연쇄방화를 진압하는 소방관들의 처절한 사투를 실감나게 그린 영화 '리베라 메' . 여성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금녀(禁女)의 영역' 이었던 화재 현장을 누비는 여성 소방대원이 국내에서 처음 등장해 새로운 소방역사를 쓰고 있다.

신혜숙(申惠淑.24.인천남부소방서 구월파출소 소방사.사진)씨-. 조성모 음악에 환호하고 장동건 팬클럽에 가입했다.

아침이나 점심 중 한끼는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로 때운다. 친구들과 함께 'DDR 노래방' 을 가끔 찾는 신세대 처녀다.

겉보기는 이처럼 평범한 申씨는 지난달 화재진압 부서에 배치된 전국의 여성 소방관 30여명 가운데 화재 현장에 최초로 출동하는 기록을 차지했다.

지난달 16일 오후 7시30분쯤. 저녁식사 후 대기실에서 TV를 시청하던 그녀는 비상벨이 울리자마자 소방차로 달려갔다. 탑승과 동시에 시작한 방수복 착용은 1분만에 끝났다.

장비 무게만 12.8㎏. 현장인 인천대 제2공학관에 도착하자마자 소방호스를 둘러메고 넘실거리는 불길로 접근했다.

첫 출동이라 걱정한 선배들의 만류로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진화 지원활동을 하느라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어느날은 대낮 번화가에서 불이나 달려가자 시민들이 "어! 여자 소방관이네" 라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다 박수를 보낼 때는 쑥스러웠다고 살짝 털어놓았다.

이제는 20회를 웃도는 출동 경력을 쌓으며 선배들로부터 '겁없고 일 잘하는 막내' 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현장에 출동해 조금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재를 수습하다 보면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용기와 힘이 솟구칩니다. "

申씨가 화마(火魔)와의 전쟁에 발을 들여놓게 된 데는 대학시절 감상한 영화 '분노의 역류' 가 계기가 됐다.

'(불길속에) 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 는 소방관들의 뜨거운 동료애에 매료된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주저없이 인천지역 소방대원 임용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소방교육 기관에서 4주 동안 기초체력과 '물 뿌리기, 인명구조를 위한 로프 도강 등 '강도 높은 실전훈련을 할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申씨는 소방관의 하루를 한마디로 "바쁘다. 바뻐" 라는 말로 정의했다. 하루에 7회 이상 출동하는 날이 태반이고 한군데 불을 끄자마자 다른 곳으로 곧바로 이동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방관들처럼 그녀도 당번일에는 24시간 초긴장 상태로 근무하다보니 쉬는 날에는 잠자기에 급급해 동갑내기 남자 친구의 불만을 사기도 했으나 점차 업무를 이해하며 격려해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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