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지금 '개방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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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오후 8시 베트남 호치민시 중심가인 레주안 거리의 최고급 백화점 '다이아몬드 플라자' . 한국의 포스코 개발이 전액 투자해 약 두달 전 개장한 베트남의 첫 한국 백화점은 영업 시간이 끝날 무렵인데도 손님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한국제 옷과 화장품 등 한국 상품이 즐비한 매장에는 한국 가요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베트남 전역을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 의 열기를 실감케 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하루 평균 손님 수가 3만여명으로 2~3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고 말했다. 경제발전으로 구매력이 커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는 17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문을 앞둔 호치민시 거리 곳곳에는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방문은 베트남 통일 후 25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힘차게 개방경제를 밀고나가는 베트남은 양국 정상의 만남을 자국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파트너로 부상하는 출발점으로 삼으려 한다. 17일 하노이대학에서의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은 전국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지금 베트남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영어 열풍' 도 경제발전에 따른 해외 진출 붐과 맞물려 있다. 베트남 언어의 구조가 영어와 비슷해 학습 속도도 빠르다. 10년 안에 국민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한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駐)하노이 한국 대사관의 남관표 참사관은 "베트남은 성장 잠재력이 커 머잖아 인도차이나 반도의 맹주로 부상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베트남의 잠재력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함께 양적.질적으로 우수한 인적자원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가 7천8백만명에 이르고, 교육 열기는 동남아에서도 거의 최고 수준이다. 베트남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은 한국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시아 경제위기가 닥친 1998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주춤해졌지만 올들어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등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건설경기가 회복되고 대외수출이 급증하면서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5.6%로 높아졌다. 산업생산 증가율도 13.4%로 지난해(10.5%)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 7월 한달 동안 베트남은 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96년 이후 4년 만에 외국인 투자법을 개정해 외국 기업의 시장 진출의 길이 넓어졌고, 현지 진출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각종 모임도 마련됐다.

주식시장도 개장했고, 개방정책의 결정판으로 여겨지는 미국과의 무역협정도 타결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건 물론 미 기업들의 막대한 자금도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약 1천억달러의 경제발전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WTO)가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채무탕감 등을 약속받을 계획이다. 정보기술(IT)과 관련한 협조방안도 모색키로 했다.

베트남 경제의 도약에는 국영기업의 민영화도 큰 공헌을 했다. 현재 5천5백개에 이르는 베트남 국영기업 중 30% 이상이 적자를 내고 있는데, 올해에만 1천여개의 국영기업이 민영화됐거나 민영화 절차를 밟고 있다.

베트남 경제가 활짝 기지개를 켜면서 시장 선점을 위한 세계 각국 기업간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은 삼성.LG 등 3백여개 업체에 달한다. 올들어 대우자동차는 8천대의 차량을 팔아 지난해 동기대비 두배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드봉 화장품은 수입 화장품 시장의 15%를 차지, 점유율 1위에 올라 있다. 한국은 싱가포르.대만.홍콩에 이어 넷째로 많은 금액을 베트남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유럽기업들도 눈에 띄게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석유사인 BP아모코를 비롯, 포드.모토로라.나이키 등이 이미 터를 잡았고, 농산물 회사인 카길.아메리칸 라이스 등도 최근 대표사무소를 개설하고 영업에 들어갔다. 일본 기업들도 자동차.중공업 등의 분야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게 도사리고 있다.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고는 있지만 체제유지는 여전히 공산당과 정부가 담당하고 있어 비효율적인 요소가 많다.

다른 나라에 비해 환율이 높은 데다 각종 규제도 여전히 많은 편이며, 외환 관리와 담보 제공 등의 측면에서 외국인들에게 불리한 점이 적지 않다.

호치민〓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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