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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비난한 오바마 국정연설 후폭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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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 비난을 놓고 미국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보수 쪽은 “행정부가 사법부를 협박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진보 쪽은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밝힌 것인데 뭐냐 문제냐”고 반박한다. 바닥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전통적으로 대기업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공화당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반사 이익을 기대한다. 반면 기업보다 노조의 지지를 주로 받는 오바마의 민주당은 금권선거를 우려한다.

미 대법원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기업의 선거광고를 무제한 허용하는 판결을 낸 게 계기다. 오바마는 즉각 라디오·인터넷 주례연설을 통해 “대법원 판결은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지난달 27일 새해 국정연설에선 “외국 기업을 포함해 특수 이해집단의 자금이 무제한으로 선거판에 쏟아져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라고 재차 공격했다.

특히 의사당에서 이뤄진 오바마의 국정연설엔 대법관 9명 중 6명이나 참석한 상태였다. 오바마가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는 시점에 보수 성향의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고개를 흔들며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이 TV로 중계되기도 했다. 이를 놓고 미 언론이 “행정부와 사법부 간의 충돌”이라고 보도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이렇게 되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반인 만큼 오바마의 인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언론사 사이트엔 “오바마의 언급은 무례했다”거나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란 보수 쪽 주장이 쏟아졌다.

반면 진보 쪽은 “오바마의 발언은 대법원 판결로 빚어진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의회가 관련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일 뿐”이라며 “대통령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반박했다. 사태가 커지자 백악관은 진화에 나섰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ABC방송에서 “대통령은 대법원이 내린 판단의 순수성을 문제 삼은 게 아니었다. 판결의 문제점을 얘기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은 NBC ‘언론과의 대화’(Meet the Press)에 출연, “대법원 판결이 민주주의에 미칠 위협요소를 대통령이 얘기한 것은 적절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대법관이 왜 대통령 국정연설의 들러리가 돼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전임자인 데이비드 수터 전 대법관은 이런 관행에 반대해 재임 중 한 번도 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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