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남 초대전 '…관능의 은유'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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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서있는 소의 뒷다리다. 거대하다. 다리 높이만 2m가 넘는다. 야생 소처럼 힘있고 위압적인 다리, 가축처럼 희생자 분위기를 풍기는 다리. 낯설다.

성곡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리고 있는 김성남(29)초대전 '감추어진 관능의 은유' 전은 실존주의의 분위기를 풍긴다.

전시작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 다리 그림이 관객에게 평소에는 볼 수 없던 무언가를 직시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익숙한 것 속에서 마주치는 낯섦이다. 일상이 처음 대하는 무엇처럼 낯설게 보일 때의 불안과 부조리를 느낀다면 우리는 실존주의의 입구에 서 있는 셈이다.

가축의 다리를 낯설게 만드는 것은 그 크기의 거대함과 냄새라도 풍겨 올 것만 같은 생생한 묘사다. 작가는 "거대하고도 불가항력적인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이 나의 회화적 욕구를 자극한다. 끊임없이 표출되려 하는 모호한 이미지들이 나의 캔버스에 맞부딪친다" 고 말한다.

불안한 역삼각형 구도를 지탱하는 튼튼한 다리를 보고 있자면 묘하게 검고 풍성한 긴 꼬리가 눈길을 끈다. 어찌 보면 여인의 머리채 같다. 시야를 좁혀보면 키만한 머리채를 늘어뜨린 여인의 뒷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감추어진 관능의 은유' 라는 전시제목이 다시 떠오른다.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와 늘씬한 다리, 그리고 뒷모습을 좋아한다" 던 작가가 은유처럼 숨겨놓은 이미지인 모양이다.

올해의 신작들을 뒤로하고 1997~99년의 작품들을 본다.

나신의 30대 남자가 오리를 들고 있다. 죽은 오리를 양손에 들고 있는 얼굴없는 남자는 초인의 이미지다. 이 세상을 주재하는 자이되 자신의 실패로 인한 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런 초인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연출된 조명 아래 있다.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싶진 않습니다. 표정이 드러나면 모든게 명료해지죠. 나는 관객들이 작품 속 인물의 진실한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

김성남은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이 작가를 주목한다' (96년 동아갤러리), '젊은 모색' (98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미술 21세기의 주역' (99년 성곡미술관) 등 여섯차례의 주요 그룹전에 초대받았다.

개인전은 이번이 세번째다. 올해 성곡미술관이 선정한 '내일의 작가' 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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