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오락 프로속 '개인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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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새로운 음식을 접하며 '맛이 예술이야'하고 감탄한 적이 있을 것이다.축구 선수가 상상을 뛰어넘는 골인을 했을 때 '예술이다 예술'하면서 박수를 보낸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갈고 닦은 창조적 기량은 예술의 경지로 인정받는다.올림픽 경기 내내 눈으로 확인했듯이 뛰어난 개인기는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뿐 아니라 그 모습 자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TV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요즘 개인기 겨루기가 한창이다.아쉽게도 시청자의 눈과 귀를 번쩍 트이게 하는 개인기란 거의 없고 대개는 잘 알려진 인사들을 흉내내는 것이 고작이다.심지어 어떤 신인가수는 TV에서 노래하는 모습보다 다양한(?)개인기로 더 알려져 직업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조차 있다.

그 흉내의 대상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과거에는 역대 대통령이나 재벌이 주요 타깃이었으나 요즘은 현직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그 대상에서 죄다 빠져 버렸다.인기가 없으면 곧바로 잊혀진다는 건 피할 수 없는 대중문화의 생리인 듯하다.

하기야 개인기의 목표 대상이 된다는 일 자체가 대중의 관심권 안에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연기자로는 시트콤에서 개성적 연기를 보여 주는 오지명,축구 해설가 신문선,야구감독 김응룡,프랑스 출신의 방송인 이다도시 등이 최근의 인기 리스트다.

느닷없이 죽었다가(?) 되살아난 경우도 있다. 치열한 개인기 경쟁이 부활시킨 원로가수 윤복희,하춘화 그리고 이광조가 그들이다.

공통점은 완전히 감정에 몰입하여 열창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그들이 립싱크로 노래하는 모습을 나는 본 기억이 없다.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그 자체가 노래의 일부였기 때문이다.나이 어린 시청자들에게는 오리지널보다 오히려 흉내꾼 이미지가 더 강렬할 것이 틀림없다.

그들의 정열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은 왕년의 팬들에게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얼마 전 개그콘서트에 카피의 모본으로 초대된 윤복희씨는 본인의 노래하는 모습을 과장되게 흉내내는 개그맨 김영철을 지켜보며 "내가 몇십 년 동안 이렇게 팬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어요?"라고 그 소회의 일단을 피력했다.그 솔직함과 포용력에 나는 놀랐다.과연 '대스타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많이 씁쓸했다.

웃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웃으면 됐지 무슨 말이 많으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그러나 문제는 웃고 난 후다.앙금이 남으면 곤란하다.

코미디의 본령은 권력에 대한 야유다.오만한 권력은 비틀어야 하지만 권력을 잃었거나 그것과 결별한 자를 자꾸 흔들어서는 안 된다.

흉내내는 사람은 인기를 얻고 그 대상이 된 사람은 그 만큼의 혐오감을 얻는다면 부당하다.연예계에도 예의는 필요하다.

제로섬보다는 시너지 효과를 추구해야 진짜 엔터테이너다.더구나 대중예술계의 아티스트까지 꿈꾼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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