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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는 중·고 수준별 수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1995년부터 중.고교에서 실시 중인 영어.수학 과목의 수준별 수업이 겉돌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준비없이 형식적으로 시행해 부작용만 양산되고 있는가 하면 그나마 이동수업을 진행하던 상당수 학교도 이를 중단하고 원상태로 복귀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중학교. 이 학교는 98년 수준별 이동수업을 잠시 도입했다가 지난해 중단했다.

교실을 옮겨다니는 과정에서 각종 도난사고가 발생했고, 교사부족.교재미비로 혼란만 가중됐기 때문이다. 교육청에는 물론 분단위로 수준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한 학급의 학생 수가 50명 가까운 상황에서 실질적인 수준별 교육은 불가능하다.

현재 교육청은 3단계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본사가 조사한 대부분 학교는 실시하지 않거나 실시하더라도 시간표 편성 등의 문제로 우반과 열반의 2단계로 구분하는 학교가 대다수였다.

서울 D고 역시 1~2학년을 상대로 영어와 수학과목에 대해 우열반으로 나눠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고 있다.

열등반 학생들은 마땅한 교재가 없어 영어는 중학 교과서로, 수학은 문제를 풀지 않고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문제는 시험 때 발생한다. 대학입시의 자료가 되는 학교생활기록부의 과목별 학년 석차를 매기려면 저학력자나 고학력자 모두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등반 학생들은 '수업 따로, 시험준비 따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잠시하다가 현재 중단했다는 구정고의 김진성 교장은 "평가를 같이 하면서 능력별로 반 편성을 해 가르치라는 것은 비현실적" 이라고 비판한다.

또 수준별 수업이 사실상의 우열반 수업으로 인식되면서 학생들 사이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서울 영등포의 S중학교는 최근 수준별 이동수업을 중단하고 대신 수업을 못따라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방과 후 특별반 편성을 추진했다. 학부모.학생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당초 계획을 백지화한 것이다.

한 교사는 "그릇된 경쟁의식이 자신들에게 좋은 제도를 거부하는 모순을 낳고 있다" 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한 고교생은 "1년에 네 차례씩 반을 새로 편성하는데, 우열반을 왔다갔다 하는 친구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고 말했다.

수준별 수업이 과연 학력상에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전교조 한만중 정책기획국장은 "열반의 경우 모방효과 등이 사라져 전체적인 학력저하 현상이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며 "협력학습체계를 강화해 학습 부진아를 배려해야 한다" 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중학교 1학년에, 2002년에는 고교 1학년에 7차 교육과정이 시작돼 수준별 교육이 본격 시작된다.

7차 교육과정에선 단계형 수준별 교육과정은 상.중.하의 우열반을 편성토록 돼있고, 고교 2.3학년의 경우 대학처럼 과목 선택형 교육과정을 진행하게 돼 있다.

하지만 현재처럼 교사부족과 과밀학급 여건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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