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군사회담의 전략적 함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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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주도에서 개최된 최초의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예상대로 남북 군사 긴장 해소 문제의 진전없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경의선 복원건설을 위한 '군사실무 위원회' 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설치하기로 합의한 점과 남측이 제안한 다양한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들이 북측의 군 수뇌부에 직접 전달됐다는 점은 괄목할만한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남북관계와 특히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보다 체계적으로 평가함에 있어서 10년 전의 상황을 회고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남북한의 궁극적인 동기와 목적을 보다 신중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는 분명히 남북 군비통제와 군사적 신뢰구축의 제도화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군사적 갈등과 군사적 위협의 원천적인 해소는 결국 국가전략의 변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이러한 변화의 핵은 북한의 대남전략 개선과 궁극적으로는 체제변화에 기초한다고 생각된다.

그럴 경우 북한과 같은 특수한 유일당군 (唯一黨軍) 체제하에서 인민군의 위상 제고가 실현돼야만 한다.

그러나 인민군과 노동당이 50년동안 지탱해온 대남전략과 체제수호를 기반으로 한 국가전략을 협상에 의해 수정할 가능성은 결코 크지 않다고 본다.

이와 함께 북한은 남한과의 실질적인 군비통제와 군사적 신뢰구축이 제도화되면 될수록 주한미군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할 수밖에 없으며 한국의 중장기적인 군사전략 구상, 전력개편-현대화 방향, 그리고 한.미 연합체제의 향방 등을 핵심적인 걸림돌로 간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반도 냉전체제의 핵심적인 원인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은 바탕 위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정례화되고 군사적 신뢰구축이 보편화된다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북한의 변화가 없는 이상 한반도의 근본적인 전략적 구조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1990~91년 무렵의 한반도 안팎의 상황을 분석한 대다수의 정책 입안자들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총평을 내린 것으로 기억된다.

역사적인 남북 합의서 채택, 군사 책임자간의 만남을 포함한 고위관계자 회담의 정례화, 남북화해와 협력에 대한 주변국들의 찬사, 북한의 실용주의적 외교노선, 그리고 고조되고 있는 통일열망 등 한반도 냉전의 해빙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와 함께 현존하는 핵심적 군사문제들을 제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과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활로가 구축됐다는 견해가 압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한은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은커녕 93년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과 함께 한반도의 핵 위기를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단계적 대남침투 작전을 개시했다.

결국 10년 전과 현재의 상황을 보았을 때 북한이 실질적인 긴장완화를 구축하기 위해 남한과 협상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판단하기엔 성급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정치권력 구조가 노동당과 인민군의 복합체로 존속하는 이상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 미사일.생화학무기 등의 통제와 같은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기대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군사회담은 형식적 신뢰구축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주적(主敵)개념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으며 을지포커스 한.미연합훈련 축소, 환태평양 해상훈련 참관의 비공개, 그리고 인민군의 전례 없는 대규모 동계훈련 여파 축소 등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제반의 상황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리비아가 최근 북한으로부터 탄도 미사일을 보급받'게 되었고 시리아가 북한형 탄도 미사일을'아 실험 발사했다는 외신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의 탄도 미사일 확산 협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북한과의 군사회담과 신뢰구축 협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으나 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우리 군과 국방부의 냉철한 위협평가 능력 및 군사기술혁신(RMA)중심의 미래형 전력 개편 작업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는 정치적 결의와 군사적 의지라고 본다. 지난 반세기의 교훈을 반년 만의 교훈으로 대체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르지 않은가.

이정민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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