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 시대] 사랑 '널린 게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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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1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 한 이동통신회사가 광고에 이같이 도발적인 표현을 올렸을 때 사람들은 "정말 움직이는 거 맞어?" 라며 의아해했다.

그러나 연일 신세대 스타 커플이 TV에서 이런 얘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됐다.

"그래, 사랑은 움직일 수도 있지" 라고.

이는 사랑은 하나여야 한다는 '교리' 에 눌려 있던 사람의 생각을 트이게 한 것일 뿐 사고를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사랑의 대상을 바꿀 준비가 돼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 무선 인터넷.휴대폰.PC방 등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 준 꿈같은 세상은 우리를 한곳에 머무르는 인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으로 바꿔놓았다.

이처럼 인간이 이용하는 하드웨어들의 변화, 즉 편리하게 모든 것에 닿을 수 있도록 달라진 상황은 숨겨져 있던 인간의 깊은 속도 끄집어낼 수 있다.

"너 오늘 약속 있니."

"첫사랑 만나러 간다. 왜."

"야 그 사람은 어떡하고."

"야, 애인있으면 사람도 못 만나냐. 일단 만나보고 생각하면 되지."

최근 친구찾기 사이트들이 속속 등장, 20~30대들 사이에 인기를 끌면서 이런 내용의 대화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인터넷이란 도구의 등장으로 그 전 같으면 묻고 물어 수소문한 다음 전화를 걸어 수줍게 제안을 해야 할 일이 마우스 클릭 하나로 간단히 이뤄지게 되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다.

상황의 전환이 인간의 행동과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예다.

평생 한 사람과 살면서 그 만을 사랑하라는 일부일처제나 결혼제도 자체가 인간의 본능에 반한다고 말하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있다.

PC통신이나 인터넷 등 다양해진 통신환경은 이 틈을 파고 든다.

집밖에 모르던 평범한 가장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채팅으로 여자를 만나 불륜에 빠지기도 하고 일부는 전화방이나 인터넷을 통해 매춘을 하기도 한다. 편리해진 통신 환경이 사랑을 엉뚱하게 움직이는 경우다.

이미 1997년 개봉돼 화제를 모은 영화 '접속' 은 인터넷 환경이 사랑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 사랑에 연연하는 남자와 친구의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여자가 통신으로 대화를 나누다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파격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통신환경이 가져다 줄 변화를 미리 읽었던 작품이다.

이어 통신을 매개로 사랑을 나누는 맥 라이언의 '유브 갓 메일' 이 나왔고 앞으로도 영화와 방송에선 이런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문화평론가 이성욱씨는 모바일 시대의 만남을 이렇게 분석했다.

"통신의 발전은 인간 관계의 시.공간적인 확충을 현격하게 가속화시킨다. 따라서 만남에서는 그 시공간이 압축되고 그 사이 생각하거나 뜸들이는 시간이 줄어든다. 말하자면 목표를 향한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곧 바로 결과로 이어짐에 따라 사랑이 움직일 개연성도 훨씬 높아진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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