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화협정 체제로 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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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0일 미국 방문 중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임기가 끝나는 2003년 이전에 북한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가 마무리되길 희망한다" 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앞서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만찬 연설에서도 "4자 회담에서 평화협정 합의가 이뤄져야 하며, 협정 당사자는 남북한이 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돼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평화협정 체결은 군사적 긴장 해소 효과를 포함해 남북관계 전반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 제시다.

다만 북한의 근본적인 자세 변화와 국제사회의 협조가 필수 전제임을 고려할 때 정부는 협정에 이르는 밑그림과 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국민 앞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

평화협정은 남북한이 서로를 군사적 당사자로 인정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부인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서울을 방문한 북한군 박재경 대장이 우리 국방부장관과의 의례적인 면담조차 거부하고 일찍 돌아간 것도 국민에게는 '군사 대화 기피증' 탓으로 비춰질 수 있다.

당사자 문제는 주한 미군의 거취.지위 문제로 이어지는 만큼 특히 미국과의 사전 조율 및 상호 신뢰 확인 없이는 공허한 말놀음에 머물 수 있다.

나아가 평화협정 논의가 진전되려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 무기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국제사회가 믿게끔 해야 한다.

협정을 실제 체결하기까지 국내외에 걸쳐 복잡하게 널려 있는 걸림돌들을 어떻게 풀고 제거할 계획인지 궁금증이 이는 게 당연하다.

평화협정은 쉬운 것부터, 그리고 남북한과 국제사회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성사시켜야 한다.

우선 이달 중 열릴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한이 변화한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 군사 문제는 미국과, 나머지는 한국과 상대한다는 이중적 태도를 거듭해서는 모처럼의 6.15 공동선언 기본 취지마저 훼손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 내 여론이 납득하지 못한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들여 비료와 식량을 제공하는데 군사 대화 하나 끌어내지 못하는가' 라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군사 대화를 정례화하고 군사훈련 계획을 상호 통보한다든가, 휴전선 병력을 후방에 배치하는 등의 조치는 남북 당사자간의 의지로 가능하고, 국제사회에 보내는 평화의 신호도 될 것이다.

동시에 오는 21일 개최되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등을 통해 우방에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안심시키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사안이 복잡 미묘하고 이해 당사자가 여럿일수록 국내 여론은 물론 협상 상대와 주변국 입장을 세심히 배려하는 차분한 자세가 중요하다.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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